KB국민은행이 알뜰폰 가입자 모집 과정에서 정부의 시장 가이드라인을 넘나드는 마케팅비를 쓰고 있다. 20만원이 넘는 현금성 지원 프로모션으로 한 달 만에 2만명 넘는 가입자를 모으는가 하면, 도매대가 절반 수준인 요금제 상품을 설계해 판매한다. 중소 알뜰폰 업계는 KB국민은행의 행보에 시름이 크다. 자본력이 상당한 KB국민은행이 팔면 팔수록 손해인 알뜰폰 상품 판매에 주력하면서 출혈 경쟁 우려도 나온다.

KB국민은행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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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리브엠, 쿠팡 연계 프로모션으로 모은 한 달 가입자만 2만명

22일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알뜰폰 업계 등을 종합 취재한 결과, KB국민은행은 단말기유통법(단통법)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쿠팡과의 연계 프로모션으로 KB리브엠 가입자 수를 빠르게 늘렸다.

변재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KB리브엠은 10월 1일부터 22일까지 쿠팡과 아이폰13 시리즈 자급제(이통사 대신 단말기 제조사나 일반 유통사에서 공기계를 구매해 개통하는 방식) 단말기 구매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소비자가 쿠팡에서 자급제 단말을 구입한 후 KB리브엠에 가입할 경우, 최대 22만원의 쿠팡 캐시와 백화점 상품권 혜택을 받았다. 프로모션을 통해 모집된 가입자 수는 총 2만2736명에 달한다.

2020년 12월말 기준 KB리브엠의 가입자 수는 9만 1456명이었고, 9월에는 13만7189명이었다. 9개월간 4만5733명, 월평균 5801명을 모집했는데, 쿠팡 프로모션으로 모은 고객 수는 KB리브엠의 월평균 가입자 증가 수의 네 배가 넘는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시장 5위권 사업자는 번호이동으로 한 달에 2만~2만5000명의 가입자를 모집하지만, 무약정 유심 방식의 가입자이다 보니 많이 모으는 만큼 쉽게 이탈하는 만큼 순증 규모는 한 달 기준 몇천명을 넘기기 어렵다"며 "단일 프로모션으로 2만명을 모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고 말했다.

앞서 KB리브엠은 해당 프로모션 기간 중 단통법 가이드라인 위반 논란을 겪었다. 방통위의 자급제 단말기 유통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단말 판매자가 특정 통신사 가입 조건과 연계해 자급제 단말에 추가 할인이나 이에 상응하는 혜택을 차별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자급제 단말 판매와 통신 상품 연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KB리브엠은 직접 단말을 판매하면서 알뜰폰 상품 가입을 유도한 게 아닌 만큼 자사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방통위도 가이드라인 제재가 단말 판매자로 한정되는 만큼, 쿠팡이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사례라고 짚었다.

하지만, 프로모션 과정에는 KB리브엠이 실질적인 관여를 했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10월 21일 방통위 국정감사(국감)에 출석해 KB리브엠과 진행한 프로모션 재원을 KB국민은행이 부담했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 위반 책임에서 KB리브엠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알뜰폰 전용 오프라인 홍보관인 알뜰폰 스퀘어 전경 / IT조선 DB
알뜰폰 전용 오프라인 홍보관인 알뜰폰 스퀘어 전경 / IT조선 DB
알뜰폰 시장 출혈 경쟁 조성 우려…"혁신 서비스 취지 살려라" 지적도

KB리브엠은 쿠팡 연계 프로모션에 22만원 가량의 혜택을 제시한 데 이어 11월 자체 유사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쿠팡과 SSG 등을 통해 아이폰 자급제 단말을 산 후 자사 요금제에 가입하면 최대 18만원의 백화점 상품권을 지급하는 식이다. 다른 알뜰폰 사업자가 프로모션에서 중고 기기 보상이나 충전기 증정 등 5만~10만원대 혜택을 제공하는 것과 비교해 두 배 많은 마케팅 비용을 쓴다.

알뜰폰 업계는 KB리브엠이 단통법 가이드라인을 넘나들며 경쟁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시장의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적은 알뜰폰 시장에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면서 중소 알뜰폰 사업자의 어려움을 더한다는 설명이다.

알뜰폰 시장은 가격 민감도가 큰 시장이다. 무약정 기반인 탓에 다른 알뜰폰 업체의 요금제가 100원이라도 더 싸거나 혜택이 많을 때 소비자의 통신사 갈아타기 현상이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 사업자가 특정 요금제나 프로모션을 선보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B사업자가 유사한 사업을 선보이는 카피캣 경쟁이 빈번히 발생한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한 곳에서 요금제 가격을 내리면 다른 곳이 따라 내릴 만큼 경쟁이 심한데, KB리브엠이 유독 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시장 경쟁이 과도해질수록 중소 사업자 피해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KB리브엠은 롱텀에볼루션(LTE)을 지원하는 알뜰폰 무제한 요금제를 1만원대로 제시하기도 했다. 월 3만2900원 요금제 가입자가 KB국민카드를 사용하면 이를 1만9900원으로 할인해주는 식이다. 여기에 KB국민카드 전월 실적이 70만원 이상이라면 1만7000원의 추가 할인도 더했다. 실질적인 월 납부 액은 2900원까지 내려간다.

알뜰폰 업계는 해당 요금제의 이동통신사 도매대가가 3만3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KB리브엠이 40% 이상 손해를 보면서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자 규모가 클수록 손해를 보더라도 출혈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규모가 작을 경우 손해가 누적돼 버티지 못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KB리브엠이 3만원대 요금제를 1만원대로 주면서 시장 교란이 생기니 문제다. 한 곳에서 요금제 가격을 내리면 결국 다른 곳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KB국민은행이 금융 샌드박스로 KB리브엠을 내놨는데, 금융과 통신을 융합한 혁신 서비스부터 제대로 선보이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4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으로 KB리브엠을 내놨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금융 사업자가 혁신 서비스를 사업화하도록 금융위원회가 관련 규제를 유예해주는 샌드박스다. KB국민은행은 혁신금융서비스 유예 기간인 2년이 지나자 올해 KB리브엠의 혁신성과 공공성을 내세워 추가로 2년의 재허가를 받았다.

KB국민은행 측은 알뜰폰 시장 출혈 경쟁과 관련해 별도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