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의 30%를 차지하는 배터리는 최근 수년 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산업의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시장 흐름에 맞춰 완성차 업체와 합종연횡을 중심으로 한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했다.

세기의 배터리 전쟁으로 불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은 4월 종지부를 찍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선 CATL은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배터리 업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배터리 3사 수장이 모두 교체된 해이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짓고 있는 제1 배터리 공장 ‘얼티엄 셀즈’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짓고 있는 제1 배터리 공장 ‘얼티엄 셀즈’ / LG에너지솔루션
가격경쟁력 앞세운 中 CATL 위협에 韓 배터리 ‘주춤’

국내 배터리 3사는 2020년에 비약적 성장세를 보였지만, 2021년은 CATL과 BYD 등 중국계 기업의 공세에 밀려 다소 주춤했다. 29일 에너지 전문 조사업체 SNE리서치는 1~11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에너지 총량이 250.8GWh(기가와트시)로, 2020년 동기 보다 112.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전년 대비 소폭 하락했다.

중국 CATL은 1~11월 배터리 점유율이 직전 1~10월 보다 0.6%포인트 상승한 31.8%의 점유율로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 1위를 유지했다. 2위인 LG에너지솔루션(20.5%)과 점유율 격차는 기존 10%포인트에서 11.3%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SK온은 5.8%의 점유율로 5위를 차지했고, 삼성SDI는 0.1%포인트 하락한 4.5%의 점유율로 6위에 올랐다.

이는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CATL이 주로 생산하는 LFP 배터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만드는 삼원계(NCM·NCA) 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LFP에 밀리는 추세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도 10월 콘퍼런스콜에서 모든 기본형(스탠더드 레인지) 모델에 LFP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히며 LFP에 힘을 실었다.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SK온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SK온
LG엔솔·SK이노 ‘세기의 소송전’ 마무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4월 깊어진 감정의 골을 뒤로 하고 미국 및 우리 정부의 합의 요구에 어색한 맞손을 잡았다. 자사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집단 이직하며 기술이 탈취됐다고 본 LG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 분쟁을 제기한 지 713일 만이다.

양사는 4월 11일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가치 기준 총액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수조원대 현금을 얻게 된 LG는 실리를,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유지하고 고객사 이탈을 막게 된 SK는 명분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SK 배터리 신설법인 ‘SK온’ 출범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한 배터리 사업 신설법인 ‘SK온’이 10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전기차 공급 확대로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에 발맞춰 사업 전문성을 높이고 투자를 늘리기 위한 선택이다. SK온은 분사를 계기로 2030년까지 글로벌 선두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삼성SDI 헝가리 법인  / 삼성SDI
삼성SDI 헝가리 법인 / 삼성SDI
배터리 3사 ‘아메리칸 드림’ 가시화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올해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설비 신·증설을 확대하거나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3사가 발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2021년 3분기까지 배터리 3사가 집행한 전체 시설투자비는 5조1129억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까지 1조5910억원의 투자를 했다. 미국 얼티엄셀즈 공장 투자가 5484억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총 생산능력은 2025년 430기가와트시(GWh) 수준으로, 올해 3분기 말 155GWh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올해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을 중심으로 시설투자에 2조3933억원을 투입했다. SK온은 40GWh 수준인 연간 배터리 생산 능력을 2025년 220GWh, 2030년 500GWh로 늘리기 위해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대대적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삼성SDI의 3분기 누적 배터리 시설투자액은 1조1286억원으로 3사 중 가장 적었다. 경쟁사들이 미국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삼성SDI는 최근에야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하며 소극적 태도를 보인 탓이다. 2025년 기준 삼성SDI의 글로벌 배터리 생산능력은 120GWh쯤으로 관측된다.

왼쪽부터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 각사
왼쪽부터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 각사
‘총수의 남자들’ 배터리 사업 전면에

국내 배터리 3사를 이끌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바뀌었다. 그룹 핵심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될 배터리 사업에 총수의 ‘복심(腹心)’이 CEO로 투입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11월 권영수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이 LG에너지솔루션 CEO로 취임한 데 이어, 삼성SDI도 12월 7일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내정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SK온 대표로 복귀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