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인공지능(AI)이 각광을 받으며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이어진다. 하지만 원조 ‘AI 의사’로 알려진 IBM 왓슨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어 의료용 AI 시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SK텔레콤 AI 개발자들이 AI 기반 영상분석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AI 개발자들이 AI 기반 영상분석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AI 기술 도입한 의료 솔루션 도입 활발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강원도 평창군보건의료원은 최근 AI 뇌출혈 판독 솔루션 도입을 결정했다. SK㈜ C&C가 자체 개발한 ‘메디컬 인사이트 플러스 뇌출혈’(Medical Insight+ Brain Hemorrhage)을 적용키 위해 17일 협약식을 진행했다.

메디컬 인사이트 플러스 뇌출혈은 뇌 CT 영상을 분석해 출혈 위치와 이상 여부를 의료진에 알려주는 서비스다. SK C&C 측은 수초 내로 영상을 분석하면서도 97% 이상의 정확도를 보이며, 놓치기 쉬운 작고 미세한 출혈도 신경두경부 영상의학전문의 수준으로 판독한다고 설명했다. 분초를 다투는 뇌졸중 응급 치료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SK텔레콤과 서울대학교병원 발달장애인거점병원은 AI를 기반으로 발달장애인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발달장애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 중앙지원단인 서울대병원의 경우, 전국에서 찾아오는 환자로 2025년경까지 의료진 면담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김붕년 서울대학교병원 발달장애인거점병원 중앙지원단장은 "발달장애 초기진단이 지연돼 조기 개입 및 조기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AI를 통한 문제행동 예측 지표를 개발한다면 문제행동의 조기개입과 예방에 혁신적인 접근법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의료 AI 솔루션 기업 뷰노가 출시한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2018년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국내 1호 AI 의료기기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AI를 기반으로 골연령을 진단한다. 2021년 8월에는 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인 ‘뷰노메드 딥카스’가 식약처 허가를 받기도 했다. 뷰노메드 딥카스는 일반병동 입원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에서 수집한 혈압, 맥박, 호흡, 체온 등 4가지 활력 징후를 기반으로 심정지 발생 위험도를 예측한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인그래디언트는 자체 개발한 의료 전문 데이터라벨링 솔루션 ‘메디라벨’을 통해 코로나19 폐렴의 감별 진단과 예후 예측을 돕고 있다. 임신·출산·육아 플랫폼 기업 아이앤나는 카이스트와 신생아 맞춤형 AI 시스템을 개발 및 연구 중이다. 영유아의 음성(울음소리)과 안면(표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유아의 감정, 의사 표현, 건강 상태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에는 MRI 뇌영상을 활용한 AI를 통해 영유아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연이은 VC 투자…정부도 힘 보태

정부 역시 의료용 AI 데이터 확대 개방을 추진 중이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2021년 12월 제8차 ‘데이터 특별위원회’를 열고 ‘건강보험 분야 데이터 제공 방안’과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활용 고도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영상 데이터 개방을 확대하고, AI 의료영상 진료판독 시스템 및 실증랩 고도화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의료용 AI가 각광받으며 VC 투자도 이어진다. 의료 AI 기업 루닛은 2021년 11월 소프트뱅크 벤처스, IMM 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720억원 규모의 상장 전(Pre-IPO) 투자를 받았다. 앞서 같은 해 7월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가던트 헬스로부터 300억원을 유치한 지 약 4개월 만에 이뤄진 추가 투자다.

루닛은 딥러닝 기술 기반의 AI를 통해 암을 포함한 질병의 진단 및 치료에 기여하는 솔루션을 개발 및 제공하고 있다. 2022년 상반기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의료 데이터 플랫폼 기업 JNPMEDI는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총 2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의료용 AI 개척자 왓슨은 퇴출 수순

하지만 의료용 AI의 길을 선도적으로 개척한 IBM 왓슨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예상보다 현저히 낮은 예측 확률과 수익성 때문이다. 암 데이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오염된 데이터로 인해 제대로 된 예측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왓슨은 의사가 적은 메모와 환자 기록을 해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IBM은 IBM 왓슨 헬스 사업부를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IBM 왓슨 헬스 사업부가 연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수익성이 없고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IBM 왓슨의 실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왓슨 출시 당시 AI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러한 수준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는 아직까지는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왓슨 프로젝트에 관한 최근 하버드 경영 대학원 사례 연구의 공동 저자인 쉐인 그린스타인 교수는 "그들은 미숙한 기술로 가장 최고봉인 실시간 암 진단을 선택했다"며 "그것은 매우 위험 부담이 큰 길이었다"고 평가했다.

왓슨의 실패 사례는 AI를 활용한 과도한 마케팅 행태에도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왓슨이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도 병원들 역시 도입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며 환자 유치에 열을 올렸다.

임국정 기자 summe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