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인지적 지도에는 ‘서울’과‘ 서울 부근’ 그리고 ‘시골’ 밖에 없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남의 한 국회의원도 부산을 ‘시골’이라고 지칭한다. 부산은 인구 기준으로는 한국의 2번째 큰 도시지만, 빈집은 전국 광역 도시 가운데 압도적 1위다. 부산의 빈집은 2019년 기준 10만 9000여채에 이른다.

최근 한국경제학회는 5년 뒤 한국 경제가 제로성장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생산성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저출산·고령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바로 지방소멸이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으니 인력이 수도권으로 탈출한다. 부산 청년 10만명 이상은 10년 사이 지역을 떠났다. 청년 이탈 후 도시 역시 빠르게 늙어간다. 부산은 2021년 9월 국내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령’ 도시가 됐다. 10년 뒤면 시민 3명 가운데 1명이 노인이 된다.

‘서울’과 ‘서울 부근’에는 25~34세 청년층 56%가 몰려 있다. 한 정된 공간에 개체 수가 너무 많으면 동물들조차 새끼 낳는 것을 늦추거나 줄인다. 그래서 수도권에서의 사랑과 결혼과 출산은 특권에 가깝게 느껴진 다. 한국 사회에서‘저출산’은‘사회적 진화의 결과’라는 의미다.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명목으로 지역 예산을 조금 늘리거나 메가시티를 만든다는데, 그것이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 대비 27.5%(2018년 기준)다. 독일이나 미국, 일본보다 높다. 산업의 구조적 다양성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역을 들여다보면 부산에서는 조선 기자재와 신발 산업이, 대구에서는 섬유산업이 아직 경쟁력을 유지한다. 이들 산업의 디지털전환이 성공하게 되면, 지역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기업의 디지털전환 촉진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다음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뉴딜 1.0이 데이터 댐의 구축과 데이터 3법 개정을 통한 법적 제도화 등 인프라 마련의 역할을 했다면, 디지털 뉴딜 2.0은 전산업과 지역으로의 확산을 통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어느 곳을 향해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몽테뉴의 말처럼 지역의 산업과 기업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4차위의 역할은 또 있다. ‘시즌 1’에서 국가 데이터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특정 부처가 다루기 어려운 아젠다를 조정했다면, 앞으로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농촌의 빈집을 민박으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농림부는 반경 내 전 주민의 동의를 받아야 허용할 수 있다는 부처간 충돌은 발생해서는 안된다. 버스의 LED 광고를 허용하면서 단 10대에서만 하라고 하는 식의 행정은 더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4차위 ‘시즌 2’를 기대한다.

김석환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석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은 KNN 대표, 한국인터넷진흥원장, 한국방송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ICT 분야 전문가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산학협력단 석좌교수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