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트렌드를 인식하고 실패를 배워야 진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두렵다, 늘. 그런데 제가 깡통 차는 건 전혀 두렵지 않다. 원래 맨몸으로 태어났는데 돌아간다 해도 뭐 어떤가."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NXC 이사. /넥슨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NXC 이사. /넥슨
지난 2월 27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별세한 것으로 알려진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이사의 말이다. 김 이사는 자서전 성격의 회고록 ‘플레이’를 출판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 거래를 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었다.

"도전과 실패 거쳐야 성공"…문제 부딪히면 진솔하게 대응

그는 평소 도전과 실패를 통해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해왔다. 그는 회고록에서 "늘 새로울 순 없는 것 같다. 새로운 트렌드도 찾아내야 하지만 조직 안에서 누군가는 망할 줄 알면서도 그걸 또 해야 한다"며 "그래야 조직이 지금의 트렌드를 인식하고 실패를 배우면서 진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회피하기보다 진솔하게 다가서기도 했다. 2011년 청소년에 대한 심야 시간대의 인터넷게임 제공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입법 이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게임 많이 하지 마라. 건강에 해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임을 늦게까지 하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다양한 사회 활동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정주 이사의 과감함은 인수합병(M&A)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인수합병른 통해 넥슨을 세계 정상급 게임사로 키워냈다. 1994년 넥슨 설립 이후 세계 최초로 그래픽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 나라’를 개발해 성공을 한 데 이어 그가 인수한 게임사들이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을 내놓으며 지금의 넥슨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운 좋게 시대 흐름을 잘 탔다", "실력보다는 시대가 우리 쪽으로 흘렀다"고 답했다. 자신의 부와 업적을 내세우기보다는 조용히 뒤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은둔 경영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탁월한 M&A 감각…예술적 재능도 뛰어나

말과 행동은 그렇게 했지만, 탁월한 M&A 감각을 제외하더라도 그는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1986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으며, 1993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에서 전산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술적 재능도 뛰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빠져 산 것으로 전해진다. 재능만큼 열정도 남달라 1979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 출전해 초등부 바이올린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정주 이사는 자신의 열정을 게임 분야에 올곧이 쏟았다. 넥슨 설립 과정을 담은 회고록 플레이에 따르면 김 이사는 일본에서 닌텐도를 사려고 줄을 길게 선 인파를 보고 충격을 받은 뒤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넥슨은 2020년 대한민국 게임사 중 최초로 연간 매출 3조원의 벽을 넘었다. 최근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을 감독한 루소 형제(앤써니 루소, 조 루소)가 설립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AGBO 스튜디오에 최대 5억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진행한다고 밝히는 등 사업 영역도 확대하고 있다.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NXC 이사. /넥슨
넥슨 창업자 고 김정주 NXC 이사. /넥슨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김정주 이사가 이러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 김 이사는 살아 생전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한 그는 2011년 ‘기술 벤처’라는 과목에서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오랫동안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강의가 끝나고 난 뒤 이같이 말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함께할 만한 사람으로 좋은 사람과 유능한 사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저는 좋은 사람을 택하겠습니다."

오래 같이 즐겁게 일할 사람을 찾는 일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고인이 된 김정주 이사는 이제 넥슨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릴까. 자신이 원하던 대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결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할까.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는 디즈니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던 자신의 바람을 이뤄냈다고 얘기할까. 김정주 이사와 넥슨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보다 앞으로 해낼 일들을 향한 기대가 더 컸던 만큼, 갑작스러운 김 이사의 별세 소식은 관련 업계 사람들에게 더욱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임국정 기자 summe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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