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3000억 규모 차세대 전사적자원관리(ERP) 사업이 안갯속이다. 10조원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재무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진 탓이다.

한전 ERP 사업에는 SAP, 오라클과 같은 외산 기업은 물론 삼성SDS, LG CNS, SK C&C 등 시스템통합(SI) 사업자, 국산 ERP 업체(더존비즈온, 영림원소프트랩)가 참여했다. 기업 간 합종연횡이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사업 차질로 관심과 열기가 한풀 꺾였다.

한국전력 본사 조감도 / 한국전력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전력 본사 조감도 / 한국전력 홈페이지 갈무리
한전은 7일 올해 차세대 ERP 사업 발주가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차세대 ERP 사업은 원래 2021년 하반기 발주를 시작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올해 내 추진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의 차세대 ERP 사업이 갑작스럽게 연기된 것은 재무적 요인 탓으로 풀이된다. 한전의 재무사정은 2021년 하반기부터 악화일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한전의 2020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조863억원이지만, 2021년에는 5조860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1년만에 영업이익이 10조원쯤 줄었다.

한전 실적은 국제 유가 변화 영향이 크다. 최근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올라 연료비 확보에 비상이 걸렸는데, 전기요금은 올리지 못했다. 2021년 4분기에만 4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연료비는 19조4076억원으로 영업원가 중 29.2%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연료는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석탄 수입량 대부분을 장기계약으로 구매해야 한다. 시장상황에 따라 구입 가격이 조정된다.

올해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전의 연간 영업적자가 10조~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시절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기료 인상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배럴당 80달러(9만7000원) 내외의 고유가 기조가 유지될 경우 올해 10조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한전 역시 2021년 사업보고서에서 "국제 연료가격 상승, 외부변수인 환율과 금리의 변동 및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확대를 위한 전력구입비 증가 등 다양한 변수와 전기요금 정부정책 등으로 인해 회사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감소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연간 수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한전의 차세대 ERP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021년 대기업 SI에 정보요청서(RFI)를 보냈지만, 실제 발주의 시작 단계인 제안요청서(RFP)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ERP 사업 발주 지연 사유에 대한 이유에 대해 "검토할 내용들이 있어 미뤄졌다"며 "구체적으로 이유를 말하긴 어렵지만, 재무적인 상황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올해 발주 여부에 대한 질문에도 "현재로서는 확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