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 디페깅, 뱅크런, 연쇄파산

최근 이더리움 폭락으로 촉발된 가상자산 대출 시장의 혼란을 일컫는 말이다. 흡사 ‘죽음의 소용돌이’로 사라진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UST)와 거버넌스·스테이킹 토큰 루나(LUNA) 폭락 사태를 연상케 한다.

이 때문에 이더리움 생태계도 루나처럼 붕괴할 것이란 불안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정작 일각에서는 ‘착시현상’이라는 우려를 보인다. 이더리움 생태계는 테라 생태계와 작동 원리가 달라 ‘제2의 루나’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생태계 설계·주도하는 권도형 Vs 기술 개발 주력하는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과 테라 생태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코인 발행사와 서비스 출시 회사가 다르다는 데 있다. 테라 생태계에서는 테라폼랩스라는 기업이 테라와 루나를 발행하고, 나아가 앵커 프로토콜과 같은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을 출시·운영해 수익을 낸다. 대부분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설계하고 주도한다. 철저한 중앙화 구조다.

반면 이더리움 발행 주체는 기술 개발에만 주력한다. 파생코인인 ‘스테이킹된 이더리움’, 에스티이더(stETH, Lido Staked ETH)를 발행하는 곳은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무관한 리도파이낸스(Lido Finance)다. 에스티이더 등 가상자산을 담보로 받고 가상자산을 대출해주는 셀시우스(Celsius), 에이브(Aave), 스위스보그(Swissborg)등도 별도 법인이다.

블록체인에 가상자산을 적용하는 목적은 중앙 집중 방식의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토큰 이코노미는 상호 신뢰관계가 없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활동하고,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토큰으로 제공할 때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이를 위해 가상자산 발행 주체는 이윤 추구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더리움 발행 주체가 기업이 아닌 재단 형태를 보이는 이유다.

테라는 가상자산 발행과 서비스를 모두 관할해 토큰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 중앙화 구조의 위험성을 알리는 대표 사례다. 반면 담보로 맡겨진 에스티이더 청산 문제는 이더리움 생태계의 결함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정석문 코빗리서치 센터장은 15일 ‘에스티이더 디페깅 및 이더리움 가격 하락 현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더리움의 가격이 디레버리징(de-leveraging) 과정에서 단기적인 영향을 받을 수는 있으나, 이더리움 네트워크나 이더리움 2.0 자체의 근본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루나, 달러 페깅 위한 법정화폐 역할 Vs 에스티이더, 이더리움 교환 약정서

전문가들은 이더리움과 에스티이더의 관계, 그리고 테라와 루나의 관계가 태생부터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테라는 1달러 유지를 목표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루나는 테라가 1달러로 유지될 수 있도록 담보하는 역할을 한다. 테더(USDT)나 유에스디 코인(USDC)과 같은 스테이블 코인은 실물자산이나 법정화폐를 담보로 발행되는데, 테라 생태계에서는 루나가 실물자산이나 법정화폐를 대신하는 셈이다.

에스티이더는 ‘이더리움2.0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고 스테이킹 락업이 풀리면, 이더리움을 찾을 수 있다’는 일종의 교환 약정서같은 역할을 한다. 에스티이더가 이더리움의 가격을 유지하도록 보장하지 않는다.

정석문 센터장은 "에스티이더는 미래에 이더리움을 받을 수 있는 증표일 뿐, 스테이블 코인처럼 1:1 가격 페깅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에스티이더는 자체적인 수요와 공급의 원칙, 시간비용의 가치, 이더리움 스테이킹 보상에 대한 기대에 따라 가격이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더리움과 에스티이더의 가격 차이를 스테이블 코인과 담보가치의 괴리를 의미하는 디페깅(De-Pegging)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더리움과 에스티이더의 가격 차이가 디페깅으로 본격 표현되기 시작한 건 에스티이더를 담보로 한 대출 서비스가 생기면서다. 이더리움 가격이 하락하면서 담보로 맡긴 에스티이더가 청산될 위험이 커지고, 에스티이더 출금 시도가 늘면서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위험이 커졌는데, 이게 루나 사태와 비슷해 디페깅이라는 용어가 차용됐다는 관측이다.

정석문 센터장은 "현재 상황은 리도파이낸스나 이더리움의 근본적인 실패라기 보다는 이러한 자산 및 프로토콜을 사용해 레버리지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던 셀시우스의 강제 청산 우려에 대한 매도 압력이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테라 생태계 붕괴로 루나 0원 수렴 Vs 에스티이더 폭락해도 이더리움 1:1 교환 보장

에스티이더가 폭락하더라도 0원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루나와 차이점이다. 일단 에스티이더를 보유하면 이더리움 2.0 업그레이드 완료 후 이더리움과 교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싼 가격에 에스티이더를 매입하고 향후 이더리움으로 교환, 차익을 보겠다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에스티이더 발행사인 리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도가 파산해 에스티이더를 이더리움으로 교환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고객이 맡긴 이더리움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더리움 2.0이 언제 완료될지 모른다는 게 리스크다. 이더리움 가격 하락도 위험 요인이다. 현재 디파이 시장의 65%는 이더리움으로 거래되고 있다. 루나 사태로 디파이 시장이 위축돼 이더리움 수요가 줄었는데, 회복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매크로(거시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국 봉쇄령, 글로벌 원자재 공급량 문제로 촉발된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전고점 대비 삼분의 일 수준으로 줄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루나 사태와는 달리 이더리움을 이용하는 서비스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셀시우스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매도 압력이 높고, 매크로 불확실성과 맞물렸다는 점에서 시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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