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의 사업 확장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규제입법안의 통과가 임박했다. 늦어도 7월 안으로 자기사업우대행위를 금지한 빅테크 규제안이 상원을 통과할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조적 행보를 걷고 있다. 플랫폼 산업 보호에 방점을 두면서 민간 주도 자율규제를 추진하는 모습이다.

과기정통부가 6월 22일 가졌던 플랫폼 기업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참여자들(왼쪽부터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박대준 쿠팡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권남훈 건국대학교 교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원우 서울대학교 기획부총장,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남궁훈 카카오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과기정통부
과기정통부가 6월 22일 가졌던 플랫폼 기업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참여자들(왼쪽부터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 박대준 쿠팡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권남훈 건국대학교 교수,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원우 서울대학교 기획부총장,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남궁훈 카카오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과기정통부
美·EU, 빅테크 독과점은 못참지

3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 독과점에 강력한 제동을 걸 수 있는 규제법안이 미국 상원에서 조만간 통과할 전망이다. 이는 미국 상하원 양당 의원들이 6월 8일 빅테크 규제 법안을 위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통과에 필요한 찬성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클로버샤 의원과 그래슬리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규제법안(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은 빅테크가 자사 플랫폼에서 자기사업을 우대하는(self-preferencing)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플랫폼 기업이 자사 상품에 유리하도록 시장을 설계하고 검색 결과를 왜곡하거나, 입점업체에 자신의 상품을 이용하도록 요구하는 행위(자기사업 우대)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자사제품과 서비스를 경쟁업체보다 유리하게 제공하거나 경쟁업체에 불이익을 제공하는 등 차별적 관행도 모두 금지한다. 경쟁당국이 위반 행위을 발견하면 법원 승인 하에 긴급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법안이 통과돼 대통령 서명까지 마치면 빅테크 기업은 경영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자사 플랫폼 내에서 아마존 베이직스라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파는 공간이 눈에 띄도록 배치해서는 안된다. 구글은 자체 검색 결과에 구글 쇼핑 상품이나 구글 지도를 눈에 띄게 노출할 수 없다. 이 외에도 플랫폼이 ‘중개' 과정의 이익을 이용해 자체 브랜드를 우대하는 행위 전반이 불법화된다.

실제 아마존과 구글 등은 빅테크가 자기사업을 우대해 경쟁을 제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하원 반독점소위의 디지털시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의 직접판매 상품 개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판매량은 전체의 25~75%를 차지한다. 이는 아마존이 자사 상품에 유리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직접판매 상품으로 유인한 결과로 추측된다.

주요 빅테크 기업은 해당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빅테크 기업 관계자들은 "해당법안이 통과되면 구글지도 같은 인기있는 소비자앱이 소멸될 것이다"라고 반대했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법안 통과를 반대하면서 "해당 법안은 관료들이 우리 경제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며 "소비자 이익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U는 올해 3월 빅테크 기업의 자기사업우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디지털서비스법(DMA)’을 도입하기로 했다. DMA에 따르면 연매출과 시가총액, 서비스 이용자 수 등이 일정 규모를 넘는 플랫폼 기업은 ‘게이트키퍼’로 지정된다. 이들은 자사 서비스나 사업을 다른 제3자의 유사한 상품과 서비스보다 유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 또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상품을 노출해야만 한다.

예컨대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사업자가 자사 앱을 경쟁사 앱보다 사용자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곳에 배치하면 안된다. 최근 국내에서 문제로 꼽히는 구글의 ‘인앱결제’ 허용 등 행위도 금지된다. DMA에는 이 외에도 모든 게이트키퍼의 기업 결합 시 EU에 사전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수집된 정보는 독점할 수 없다.

기업 자율규제에 맡긴 한국…빅테크 기업 규제 손놨나

반면 우리나라는 대조적이다.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갑을문제를 다룬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평가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공정위에 해당 법 폐기를 주문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앞서 한국 공정위는 2020년부터 빅테크 기업의 자기사업우대를 금지하는 심사지침을 마련했다. 플랫폼 심사지침은 공정위가 플랫폼시장에서 발생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및 불공정거래 행위를 심사할 때 사용하기 위한 내부지침이다. 지난 1월 행정예고를 마쳐 공정위의 내부 전원회의 의결만 거치면 되는 상태나 여전히 답보상태다.

우리나라는 당분간 빅테크 기업 규제를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온라인 플랫폼 산업 보호를 강조하면서 민간 주도 자율규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민간이 주도하는 플랫폼 자율규제기구 설립을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빅테크 기업의 시장지배력 확장에 따른 독과점을 규제할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 중인 글로벌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기업의 자율적인 움직임에 맡긴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이러한 흐름을 고려해볼때 온플법 등 플랫폼 규제안이 이번 국회에서 논의되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