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제약사 ‘머크’와 손을 잡는 등 광폭의 행보를 보이면서 글로벌 바이오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국내 대표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국 기업 성장에 박수를 보내는 한편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행보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시러큐스 공장 전경. / 롯데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시러큐스 공장 전경. / 롯데바이오로직스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미국 현지 법인(LLC)을 세우고, 바이오 CDMO 사업을 본격 가동할 채비에 나섰다. 최초 출자금은 10달러로, 롯데바이오로직스가 100% 출자한 자회사다.

의약품 제조 공장 등을 인수하기 위한 출자금은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BMS)으로부터 증자할 예정이다. 롯데지주는 이미 5월에 미국 BMS로부터 의약품 제조공장을 1억6000만달러(2000억원) 취득하는 자산양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BMS와 최소 2억2000만달러(2800억원)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 계약도 맺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품은 시러큐스 공장은 3만5000ℓ(리터)의 항체 의약품 원액(DS) 생산이 가능하다. 롯데는 추가 투자를 통해 완제의약품(DP)과 세포·유전자치료제 생산이 가능한 시설로 전환하고, 10만ℓ 이상 생산공장 건설도 고려하고 있다.

앞서 이달초에는 ‘밀리포어 씨그마’와 바이오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밀리포어 씨그마는 독일 기반 글로벌 제약사인 머크(Merck)의 북미 생명과학 사업부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최근 인수한 미국 시러큐스 공장 증설에 협력해나가는 한편, 차세대 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 신사업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밀리포어 씨그마로부터 제조 솔루션 및 인력 교육 등 바이오 사업과 관련된 전반적인 기술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머크 생명과학 사업부는 280개 이상의 바이오의약품 사업자 시장 진출을 지원했고, 최근 10년 사이에만 100개 이상의 GMP 의약품 출시 경험을 갖췄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측은 머크 생명과학 사업부가 보유한 바이오의약품 공정 개발과 GMP(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제조 분야 경험에 대한 교류를 통해 바이오 사업 추진에 속도를 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성장 가도 ‘Ctrl+V’ 중인 롯데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이러한 행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초기 성장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과 함께 1공장 착공에 들어가 2012년 완공했고, 2013년 BMS와 첫 생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재 롯데 바이오 사업을 이끄는 이원직 상무(신성장2팀장)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인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법인 대표(롯데지주 상무). / 롯데지주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인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미국 법인 대표(롯데지주 상무). / 롯데지주
이원직 상무는 2010년 삼성전자 사업추진단에 합류, 삼성바이오로직스 품질팀장을 거쳐 DP사업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전에는 미국 제약사 BMS에 근무하며 셀트리온 CMO(위탁생산) 프로젝트의 품질부문을 담당했다. 롯데지주 바이오팀은 그간 외부 협력을 강화한다는 기조로 기존 바이오 업체를 인수, 제약사와의 조인트벤처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초기 투자 규모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삼성바이오로직는 설립 당시 자체 설비 확보에만 2조1000억원을 투자했고,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4공장 건설에만 1조7400억원을 투입한 것에 반해, 롯데는 향후 10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 선언했다. 규모면에서도 롯데바이오로직스 의약품 생산 능력이 3만5000ℓ인 것에 반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62만ℓ에 육박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자체 설비를 건설하기 보단 이미 구축된 인프라와 시설들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롯데가 지난달 열린 ‘바이오USA’에서 향후 글로벌 톱10 진입을 자신한 이유도, 적은 투자비용 대비 확실한 인수를 통해 이미 선점된 시장을 잠식해 나간다는 전략 덕분이다.

또한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인 신약 개발이 아닌 핵심 기술을 외부로 인계받아 위탁생산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 전략은 롯데그룹 역시 다양한 산업군에서 경험해왔던 방식이기 때문에 바이오 영역에서도 자신들의 기량을 대폭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거래처 같아지는 롯데와 삼성…시장 경쟁 불붙이는 외국계 제약사

일각에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롯데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서로 경쟁붙여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달 1일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독일 머크의 미국 사업부가 협력한데 이어 4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머크(MSD)가 2768억원 규모의 위탁생산계약을 체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전경. /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 전경. / 삼성바이오로직스
독일 머크와 MSD는 현재는 분리된 법인이지만, 그 뿌리가 같다는 점에서 롯데와 삼성은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로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다는 점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동반자 관계로 바라보고 있다"며 "다만 향후 글로벌 고객들이 두 기업에 수주(受注)를 고민을 한다면 이미 세계 최대 생산 라인을 갖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롯데바이오로직스 중 누구를 택할지는 시장이 판단할 것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 의견은 다르다. 국내에서 터를 잡고 성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달리 초기 공장을 미국에 세워버린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영업 측면에서 더욱 공격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수많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연구소가 밀집해 있을 만큼 미국은 고객과 접촉하기 좋은 곳이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사무소가 존재하지만 전진 공장까지 현지에 구축한 롯데바이오로직스를 마냥 동반자로 바라보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상황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