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전·IT 기기 제조사가 최근 내놓는 제품에 ‘대륙의 향’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삼성전자가 5년 만에 새로 출시한 제습기, LG전자가 3년 만에 출시 예정인 태블릿 PC 얘기다. 양사는 사실상 중국산과 다름없는 제품에 자사 브랜드를 입히는 ODM(제조자개발생산) 방식으로 시장 재진출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2017년 단종한 제습기 제품을 올해 5월 재출시했다. 재출시한 ‘인버터 제습기’는 높아진 제습 성능과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을 앞세운 모델이다.

삼성전자가 5월 출시한 인버터 제습기 제품 정보.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5월 출시한 인버터 제습기 제품 정보.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5년 만에 제습기를 출시한 이유는 최근 몇 년 새 이상기후 여파로 제습기 시장이 새롭게 떠올라서다. 국내 제습기 시장 규모는 2013년 13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2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2021년 100만대까지 회복하며 올해도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LG전자도 늘어나는 교육용 IT 기기 수요에 맞춰 태블릿 신제품인 ‘프로젝트 제타(모델명 10A30Q)’를 3분기 중 내놓는다. LG전자가 태블릿 신제품을 내놓는 것은 2019년 G패드5 이후 처음이다.

LG전자는 6월 10일 ‘프로젝트 제타(모델명 10A30Q)’의 무선데이터통신시스템용 무선기기 전파인증을 받았다. 전날에는 무선랜 글로벌 협회인 와이파이(WIFI) 얼라이언스에서 태블릿용 와이파이 인증을 받았다.

LG전자가 2019년 출시한 태블릿 'G패드5' / LG전자
LG전자가 2019년 출시한 태블릿 'G패드5' / LG전자
하지만 이들 제품은 모두 ODM 제품으로, 성능보다는 원가절감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삼성전자의 2022년형 제습기는 ‘Wuhu Maty’라는 중국 기업이 설계부터 생산까지 위탁받아 만든 제품이다. 이 제품은 비스포크 색상만 채용했을뿐 삼성전자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인 ‘스마트싱스 홈 라이프’를 제공하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크다.

디자인에서도 원가절감 요소가 눈에 띄는 제품이 있다. LG전자의 프로젝트 제타는 ‘HUIZHOU HEG TECHNOLOGY CO.,LTD.’라는 중국 기업이 ODM 방식으로 생산한다. 성능이 기대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년 전 OEM 방식으로 출시한 비스포크 식기세척기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전업체 쿠쿠가 내놓은 비슷한 성능의 식기세척기와 비교가 된 탓이다. 양사가 선보인 식기세척기 모두 같은 제조사인 중국 업체 메이디(Midea)가 전량 생산했지만, 삼성전자는 직접 개발한 제품의 생산만 메이디 측에 맡겼었다. 제품 가격은 삼성전자 모델이 쿠쿠 제품 대비 두배 가까이 비쌌다.

대형마트에서 가전 유통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가전 제품 중 중국에서 생산된 ODM 또는 OEM 모델이 상당 수 있고, 이를 인지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며 "이같은 사실을 참고 차원에서 알려주면 대체로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일부는 구매를 망설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과거 식기세척기 논란에 대해 "식기세척기는 삼성전자 특허 기술과 고유 디자인으로 만들었다"며 "부품 하나하나에 대한 컨펌도 자사가 하고 있어 ODM으로 볼 수 없다"고 해명한 적 있다.

창문형 에어컨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삼성전자가 개발에 참여했고 국내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관리 방식으로 협력해 생산 중인 OEM 제품이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제습기와 태블릿 제품에 대해선 ODM 방식임을 인정했다. 특히 LG전자는 앞서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한 만큼 태블릿 개발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향후 출시될 프로젝트 제타는 ODM 제품이 맞다"며 "교육용 공공조달 시장에 납품하는 용도로 활용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