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월 30일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의 3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파운드리 공정으로 초도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25일에는 화성캠퍼스 V1 라인에서 제품 출하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파운드리 사업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의 평가처럼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에 처음으로 기술에서 앞섰다는 상징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TSMC는 3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대형 고객사를 이미 선점했고,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도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요인이 상당하다. 삼성전자로선 GAA 공정의 안정적 수율 확보에 매진하면서 고객사 신뢰를 얻어야 하는 길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나노 파운드리를 세계 최초 양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를 세계 최초 양산하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GAA 기반 3나노 공정 양산을 토대로 신규 고객사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TSMC의 벽은 여전히 굳건하다.

26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TSMC는 삼성전자보다 6개월쯤 늦은 올해 말 핀펫(FinFET) 기반 3나노 공정 상용화에 돌입한다. 삼성전자보다 한발 늦은 TSMC의 3나노 로드맵에도 애플, 인텔, 퀄컴, AMD 등 대형 고객사는 꿈쩍하지 않는다. 앞선 기술력을 넘어 보이지 않는 신뢰의 벽이 삼성전자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삼성 파운드리 고객사의 이탈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밍치궈 대만 TF인터내셔널 연구원에 따르면, 퀄컴은 그동안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양산한 스냅드래곤 7 1세대 후속 버전인 ‘스냅드래곤7 2세대’ 위탁생산을 TSMC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스냅드래곤8 1세대 양산을 삼성전자에 맡겼다가 업그레이드 모델인 스냅드래곤8 1세대 플러스(+)를 TSMC에 맡긴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다.

2021년 3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최근 신규 고객사로 대만 팹리스 미디어텍을 확보했다. 1년 4개월 만에 퀄컴, 아마존에 이어 미디어텍까지 세계 주요 IT 기업의 반도체 생산을 수주하며 경쟁자인 TSMC와 삼성전자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디어텍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서 글로벌 1위를 놓고 퀄컴과 맞붙는 회사다. 대부분의 칩 생산을 대만 TSMC에 맡겨 왔는데, 최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인텔로 파운드리를 다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에 불과해 아직은 TSMC(53%)와 삼성전자(16%)의 경쟁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따라잡고 있고, 공격적인 고객사 유치에 나서면서 태풍의 눈으로 부상 중이다.

인텔은 3월 미국 애리조나에 200억달러(26조 22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신설한다고 발표했고, 미 오하이오주에도 최대 1000억달러(131조1000억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68억유로(9조 396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25일 경기도 화성캠퍼스 V1 라인 앞마당에서 열린 3나노 파운드리 양산 출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25일 경기도 화성캠퍼스 V1 라인 앞마당에서 열린 3나노 파운드리 양산 출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3나노 GAA 공정이 파운드리 시장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수율 안정화가 최우선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수율 향상과 함께 각사 요구사항을 최적화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TSMC에 쏠린 대형 고객사 물량을 뺏어올 여지가 충분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의 기본 스탠스는 공급선 다변화다. 삼성전자가 내년 2세대 3나노 공정에 진입하면서 수율을 예정대로 끌어올린다면 퀄컴, 엔비디아 등 고객사 확보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며 "삼성전자 3나노 기술을 향한 비관적 시각이 경쟁국 언론으로부터 끊이지 않는 것 자체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에서 3나노 GAA 파운드리 공정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향후 평택캠퍼스까지 생산처를 확대할 예정이다. 3나노 GAA 공정은 고성능 컴퓨팅(HPC)에 처음 적용했다. 주요 고객들과 모바일 SoC 제품 등 다양한 제품군에 확대 적용을 위해 협력 중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