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이 최근 2년새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코로나19 초반 침체되는가 싶더니 대규모 유동성 장세로 호황기를 맞으며 전국민 공모주 열풍까지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냉각기에 들어갔다.

올해 들어 얼어붙은 시장에 군불을 지펴줄 대어로 꼽히던 기업들의 상장 포기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CJ올리브영이 상장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기업가치가 최대 4조원으로 평가되던 CJ올리브영은 올 하반기 예비심사를 청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현대오일뱅크가 상장 추진을 접었다. 현대오일뱅크의 기업가치는 최대 10조원. 올리브영과 현대오일뱅크 모두, 상장 철회 이유로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이대로는 적정한 몸값을 평가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IPO 시장 침체 악순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적정한 기업가치 판단이 어려워 대어급 기업이 철회를 결정하고, 이를 본 중소기업 역시 상장을 미루거나 공모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주관사의 몸값 책정 방식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는다. 공모가 설정이 적절하지 않아 상장 후 주가 변동성이 커졌고, 이를 본 투자자들이 공모에 들어가는 걸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모가 밴드는 주관사가 기업 실사를 통해 설정하게 된다. 이후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이를 고려, 발행사(상장 기업)와 주관사(증권사)가 협의해 공모가를 확정한다. 공모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증권사는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실제 2020년에 상장한 기업 70곳 중 공모가가 밴드를 초과해 결정된 기업은 9곳에 불과했다. 이를 비율로 계산하면 전체 기업 중 12.9%다. 2021년에는 이 비율이 대폭 늘어났다. 89개 상장기업 중 밴드를 초과한 곳이 37곳이나 됐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 10곳 중 4곳의 공모가가 밴드를 초과한 수준에서 결정된 셈이다.

올해 역시 예년 대비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날까지 상장을 완료한 기업 41곳 중 29.3%(12곳)가 밴드를 초과한 수준에서 공모가를 결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공모가까지 높으니 시장 분위기는 더욱 더 냉랭할 수 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시장 관계자는 "공모가가 밴드를 초과하거나 미달해서 결정된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며 "주관사가 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몸값을 써냈기 때문에 밴드를 벗어난 공모가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특정 하우스는 몸값을 높게 설정한다’는 인식이 퍼져 신뢰도가 하락한다"며 "실제 IPO 시장에서 대형 하우스로 꼽히는 모 증권사의 경우 이미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몸값을 높게 책정한다고 평가받고 있어 이들이 주관하는 딜은 신고서를 열어보기 전에도 비쌀 것이라고 생각해 들여다보지도 않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IPO 시장 전성기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분간 2020~2021년과 같은 이례적인 호황기가 다시 오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에도 역대 최대 기록이 쏟아지며 신기한 상황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주관사들은 시장이 침체 돼 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시장에 참여하는 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도 최전방에서 듣고 있다. 눈 앞의 수수료 수익이 아닌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적정한 기업 가치 산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