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넘어가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장관 공석은 18일 기준 86일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 출범 당시 주요 추진과제로 선정한 연금개혁부터 최근 불거진 필수의료 문제까지 복지부가 진행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정책을 이끌어갈 장관 후보에 대한 하마평마저 끊긴 분위기다.

보건복지부. / 조선DB
보건복지부. / 조선DB
정부와 대통령실에 따르면 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한 이후 복지부 장관 후보 물색 작업이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진영 전 장관이 퇴임한 뒤 문형표 전 장관이 취임하기까지 소요된 63일이 지금까지 가장 길었던 복지부 장관 공석 기간이었지만, 이번 정부에서 최장기간 공석 기록을 경신하게 됐다.

그나마 최근 주요 실장과 국장급 인사가 결정돼 한시름 놓인 상황이지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현재 공석인 상태라 복지부 주요 현안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윤 정부가 주요 추진과제로 삼았던 연금개혁은 이미 정치권에서 이번 정권 내 바꾸기 힘들수도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년 하반기 개편안을 마련하겠다는 발표와 더불어 2024년 총선까지 연금개혁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낮아진 지지율로 인해 범국민적인 영향이 가해질 연금개혁을 쉽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선별적 복지 확대’도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기초생활보장제 등 복지사업의 선정기준으로 쓰이는 ‘기준 중위소득’을 전년 대비 5.47% 상승시켰으나, 물가 상승률(6%)보다도 낮은 인상이라 사실상 감소됐다고 보는 측면이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뚜렷한 기준점도 없다. 정부는 당초 ‘과학방역’을 주창하며 체계적인 방역을 예고했지만, 현재까지 국민이 납득할만한 방역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무증상자에 대한 신속항원검사(RAT)를 유료화했지만, 밀접접촉자임에도 비용 부담으로 검사를 기피해온 국민들이 늘면서 다시 RAT 무료화를 선언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과잉 규제로 평가받고 있는 입국 전후 코로나 검사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 출입국 시 두 번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국가는 OECD 38국 중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가 방한해 외교부와 복지부 간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자리에도 외교부는 박진 장관이 나왔지만, 복지부는 이기일 복지부 제2차관이 협약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와 게이츠 재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글로벌펀드·감염병혁신연합(CEPI)·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 보건기구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에서 다자 보건협력을 다짐했다. 다만 이들 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복지부 장관의 판단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최근 논란이 된 필수의료 부족 현상에 대한 해결책 마련도 장관 공석에 영향을 받고 있다.

복지부는 필수의료지원 전담조직(TF)을 구성해 중증의료 수가 조정, 중증응급환자 중심 전달체계 개편, 전문과목 세분화 등 관련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의료계에서는 장관 공석으로 정부 핵심 추진과제도 지지부진한 판국에 필수의료 사태 해결이 정상적으로 이뤄질지 미지수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장관 후보자로 거론된 인물이 없다 점이다.

앞서 김승희 전 국회의원 사퇴 이후, 김강립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 정기석 전 질본장,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같은 당 이종성 의원, 김미애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 다수 인물이 거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들도 실패를 거듭한 복지부 장관 후보 지명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다, 대통령실은 세 번째 인사마저 실패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신중론을 펼치면서 후보 지명 시간은 더욱 지연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장관 공석으로 인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측은 "1·2 차관을 중심으로 업무가 돌아가고 있고, 대통령도 차관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장관 부재를 최소화 하고 있다"며 "주요 업무들 역시 최근 국장급 인사가 대부분 결정남에 따라 공백없이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는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을 중심으로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수행 중이기 때문에 복지부 장관 공석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보건의료 정책과 더불어 최근 불거진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관 임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장이 공석인 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차기 복지부 장관이 오기 전에 무리한 결정을 난무하게되면 다시 번복돼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주요정책은 추진보다는 면밀한 검토를 통해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업무가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통령실의 문제도 있지만 현 정부를 공격하고자 장관 낙마에 기를 쓰는 야당의 태도도 바뀔 필요가 있다"며 "복지부처럼 막대한 예상을 집행하고 국민 보건 안전을 책임질 부처의 수장이 오랜시간 공석으로 남을 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이 감당해야한다는 점을 정치권은 명심해야한다"고 비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