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자율등급제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30일 열릴 국회 본회의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전망이다. OTT 업계가 그 동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율등급제 도입,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구조 개선, 콘텐츠 세제지원 확대 등 3가지를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예측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 중 하나가 해결되는 셈이다.

기존 심의 규정은 너무도 까다롭고 복잡해 이들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했다. 현행법상 방송채널은 사전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OTT는 사전심의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제때 콘텐츠를 공급하기가 어려웠다. 배달이 아무리 빨라도 배달할 ‘물건’이 없으면 경쟁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이용자가 보고 싶어하는 콘텐츠를 제때 공급하고 그 시기를 맞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여기에 OTT 업계는 수입을 예측하기 어려워 ‘물건’을 만들기 위한 투자 규모도 섣불리 늘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OTT 업계가 언제 심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을지, 제작비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워 경쟁이 힘들다고 토로한 이유다.

이제 OTT 업계는 두 개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그나마 세제지원은 국회에서도 공감하고 있어 자율등급제처럼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세제지원은 제작사가 투자를 유치할 때 일정 수익을 보전해 주는 역할을 한다. OTT업계는 국내 세액공제율을 해외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현재 미국, 호주, 영국, 프랑스 같은 해외 선진국은 제작비 20~30% 이상을 공제한다. 국내는 3~10%에 불과하다. 글로벌과 비교하면 OTT 업계의 요구는 결코 과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유료방송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 구조 개선이다. 자율등급제와 세제지원은 법과 제도를 개선하면 되지만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구조 개선은 IPTV사 등 기업 간 계약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로그램 사용료는 선(先)공급 후(後)계약 방식으로 진행된다. 받는 금액도 제작비 3분의 1 정도다. 드라마를 보다 배우가 뜬금없이 화장품을 칭찬하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PPL 광고는 제작사가 사용료를 제외한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계약을 먼저 하고 콘텐츠를 공급하면 공급기업이 수입을 예측할 수 있다. 콘텐츠 업계는 수입이 예측되면 콘텐츠 투자 계획도 구체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선계약 후공급을 명문화한 가이드라인을 2021년 12월에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이행 시점을 확정하지 않았다. 사업자 간 협의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협상 자리 마련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업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1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는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역동적으로 변하는 콘텐츠 업계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정부·국회가 좀 더 속도를 올려야 한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시기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OTT 업계가 글로벌 경쟁에서 콘텐츠 공룡들과 그나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