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게임 업계를 들썩이게 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이 힘을 잃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했고 교육계, 의료계에는 도입 신중론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장관 자리는 여전히 공석인데다가 주요 국정 과제, 내년도 예산안 등에 현안이 산적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주장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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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주도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논의하는 가운데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던 보건복지부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질병코드 도입에 동조하던 의료계와 교육계가 몇년 사이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면서다.

의료계 "도입 기준 명확해야"…전국 교육청 과반은 ‘신중론’ 선택

이런 분위기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발간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료 분야 전문가들은 게임이용 장애를 보이는 이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다양한 정신과적 질병이 존재하는 만큼 환자의 명확한 구분을 위한 분류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명확한 기준 없이 섣불리 질병코드를 도입할 경우 이를 다시 바로잡기가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분야 전문가들 역시 게임이용장애를 명확한 기준 없이 질병코드로 도입하는 경우 인선 학교에서 출결이나 생활 지도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른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 산업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입 1차 년도에는 전체 산업 규모 약 20%, 2차 연도에 약 24%가 감소해 총 8조8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게임 산업 평균 매출, 취업 기회 등도 함께 축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산업의 진흥에 관한 여러 제도가 그 존립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중한 형량 없이 게임을 단순 질병으로 보는 프레임은 산업적 가치를 고려할 때 우려된다는 것이다. 중독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일부 유발하는 경우라도 이에 대해 함부로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도 꼬집었다.

콘진원 보고서 외에도 교육계에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최근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실시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찬반을 묻는 조사에 따르면 전국 교육청 11곳이 도입 신중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게임도 문화예술…도입 목소리 높인 복지부 ‘난감’

여기에 정치권에서는 게임 산업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8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문화예술 범위에 게임 등을 포함하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 개정안 대안을 처리했다.

더군다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건복지부는 장관직이 줄곧 공석인 상태다. 이에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 규제, 논의 등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힘을 실을 경우 관련 업계와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을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콘진원의 보고서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지 않는 경우 혼란이 발생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으로 보건복지부가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없다"며 "소관부처 중 한 곳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민관협의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송가영 기자 sgy0116@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