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부터 국내 커뮤니티에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문과를 졸업하면 취업시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곧바로 치킨집을 차리고, 이과를 졸업하면 10여년 정도 개발자로 있다가 40세 전후로 회사에서 쫓겨나 치킨집을 차린다는 말이다.

학력 및 전공에 무관하게 결국 취업에 실패한 청춘들과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의 기술자들이 모두 치킨집으로 수렴되는 생계의 알고리즘 안에서, 단군의 후손들이 가진 창의성을 모두 쏟아 부어 닭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K-컬쳐의 성공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빈번하게 먹어대던 한국산 치킨도 덩달아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해외 유튜버들이 "코리안 닭튀김, 너무 마쒸써요, 짱!"을 외치며 ‘KFC’란 "Korean Fried Chicken"이 아니냐는 찬양 영상이 글로벌하게 올라왔다.

과연 그렇다. 한국의 튀김닭은 그저 반죽가루 묻혀 튀겨낸 외산 치킨의 단출한 메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취향에 맞춰 퍽퍽살과 닭다리만을 골라 부위별 주문도 가능하고, 뼈를 발라내는 번거로움을 제거한 순살 치킨도 있다. 매운맛과 단맛의 조화로움이 느껴지는 양념치킨이나 이쑤시개로 한입에 찍어 먹기 좋은 닭강정은 이미 튀김닭 계보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 십여 년간 국내 치킨 업계는 고추장, 간장, 크림, 깐풍, 짜장, 마라 등 각종 소스의 변주를 통해 맛을 다각화시켰고, 치즈를 끼얹고 땡초를 더하고 떡볶이, 양념새우,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곁들여 튀긴 재료로 식감과 풍미를 다양화했다. 그저 주문 양과 찍어먹는 소스 서너 종만으로 구분되는 해외 튀김닭에 비해 국내 치킨업계가 이뤄낸 성과는 실로 경이롭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튀김닭을 향한 국내 장인들의 집요함과 창의성은 멈추지 않았다. 피자 도우나 햄버거 패티 대신 닭 가슴살을 활용, 탄수화물 대신 단백질 섭취를 극대화시켜 ‘정크푸드’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심지어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배합재료의 변주를 통해 ‘건강하지만 맛없는’ 닭인 가슴살을 ‘건강하고 맛있는’건강식의 반열에 끌어올렸다. 해외 튀김닭과 국내 튀김닭 간에 존재하는 간극. 진정한 ‘초격차’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햄버거, 피자, 족발, 보쌈, 베트남 쌀국수, 마라탕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수많은 경쟁식품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배달메뉴는 여전히 치킨이다. 요컨대 튀김닭 혹은 치킨이라 불리는 그 식품은 적어도 21세기 현 시점에서는 한국인의 생계형 알고리즘의 끝이자 외식 선택의 최대 귀결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산 치킨이 이뤄낸 이 모든 성과는, 다른 한편으로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직업군을 형성하지 못한 한국의 인문 사회학적 한계와, 전문직의 지속성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기술 산업적 한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휴대전화가 어느 정도 일반화됐지만, 전화, 인터넷, 카메라, TV의 기능이 모두 결합된 스마트폰이 현실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이렇게 빨리 대중화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등장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은 기능성과 미학적인 완성도까지 갖춰나가며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지형도를 바꾸어버렸다. 카페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는 본인들의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이제 사람의 존재 자체가 디지털 안으로 옮겨가는 시대, 이른바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 멀지 않은 시점에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일어나 결국에는 가상세계가 실존의 물리공간을 압도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에서 물리적 실체와 가상공간 내 아바타 간의 불일치가 주는 정체성의 혼돈을 철학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가상세계가 현실도피처로 혹은, 일탈의 범죄공간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사회과학적으로 검토하고 대처방안에 대해서도 사전에 강구해야 한다. 기술 영역에서는 콘텐츠에서 플랫폼, 플랫폼에서 디바이스, 디바이스에서 네트워크로 발전되는 메타버스 산업에 필요한 원천기술과 응용기술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기술의 변화가 가진 사회적 함의를 인문학적으로 조망하고 성찰하는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직업적 토대가 전혀 없다. 개발 경험을 심화, 확장시키지 못한 채 응용기술만 전전하다가 트렌드가 지나면 경쟁력을 잃고 회사에서 밀려나는 중년의 개발자들만이 있다.

치킨산업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인력들이 ‘기승전치킨’으로 귀결되는 작금의 현실은 미래를 위한 전문가 양성의 기회를 너무 가혹하게 희생시키고 있다. 부디 한국사회의 청년들과 중년들에게 닭을 튀기지 않을 자유를 달라.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jane0725@nate.com
현(現)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 부산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운영위원, 전(前)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업경제혁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