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제품 양산에 돌입한 데 이어,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도 9월 중 핀펫(FinFET) 기반 3나노 제품 양산에 들어간다. 파운드리 초미세공정에서 양사 간 대결이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보다 한발 늦은 3나노 로드맵에도 TSMC는 자신감이 넘친다. 애플, 인텔, 퀄컴, AMD 등 대형 고객사가 여전히 TSMC와 우선 손을 잡길 바라고 있어서다.

TSMC는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고객으로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인텔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고객은 애플로 알려졌다. 애플에서 자체 설계한 M2 프로 칩에 TSMC의 3나노 칩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25일 경기도 화성캠퍼스 V1 라인 앞마당에서 열린 3나노 파운드리 양산 출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25일 경기도 화성캠퍼스 V1 라인 앞마당에서 열린 3나노 파운드리 양산 출하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최근에는 TSMC CEO가 공개 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삼성전자를 향해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등 초미세공정에서 양사 간 경쟁이 격화하는 분위기다.

8월 30일 대만 주요 매체는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연례 TSMC 기술포럼 연설에서 "2000명의 연구진을 보유한 TSMC는 상품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절대 내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며 "고객은 TSMC에 설계를 빼앗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웨이저자 CEO는 "TSMC의 성공은 곧 고객의 성공이지만 경쟁 상대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고객이 성공하든 말든 경쟁 상대는 따로 자기 상품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연설에서 '경쟁 상대'가 누구인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고객사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파운드리 사업과 스마트폰 등 완제품 사업을 동시에 벌이는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TSMC 회사 전경 / TSMC
TSMC 회사 전경 / TSMC
삼성전자는 6월 30일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의 3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초도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3나노 GAA 공정을 고성능 컴퓨팅(HPC)에 처음 적용하고, 주요 고객들과 모바일 SoC 제품 등 다양한 제품군에 확대 적용을 위해 협력 중이다.

GAA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의 4면을 게이트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기존의 ‘핀펫’(fin-fet) 기술보다 반도체의 전류 흐름을 더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의 3나노 GAA 공정이 파운드리 시장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수율 안정화가 최우선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2026년까지 300곳의 고객사를 확보해 파운드리 사업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이상의 핵심 수익원으로 키워낸다는 목표다. 수율 향상과 함께 각사 요구사항을 최적화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면 TSMC에 쏠린 대형 고객사 물량을 뺏어올 여지가 충분하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자료를 보면 2022년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1321억달러(180조원)로, 2021년보다 20% 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2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위 TSMC에 크게 뒤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1분기 기준 53.6%, 삼성전자는 16.3%로 집계됐다.

매출액 차이도 크다. 1분기 기준 TSMC의 매출액은 175억 2900만달러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3.6%로 집계됐다. 2위인 삼성전자 매출액 53억 2800억달러의 3배가 넘는다.

인력 부문에서도 TSMC 임직원 수가 6만 5152명이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임직원 수 6만3902명 중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은 2만명쯤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앞선 기술인 선단공정에 한정할 경우, 양사의 점유율 차이는 크지 않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10나노 이하 공정에 한정한 점유율이 TSMC, 삼성전자 각각 6대4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경계현 DS부문장 대표(사장)는 7일 파운드리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격차 등을 고려할 때 TSMC를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TSMC를 따라잡을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강조했다.

경 사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용적 1등을 달성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며 "(그 방법으로는) 선단 노드 공정에서 이기는 방법도 있고, 주요 고객에서 이기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경 사장은 이어 파운드리를 호텔 사업에 비교해 생산능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파운드리는 캐파를 먼저 확보하고 고객을 유치하되 롱텀(long term) 파트너십이 중요한데 우리가 그 부분에서 부족했다. 큰 고객을 확보하려면 큰 호텔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