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비 공시제가 시행된 지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배달비가 치솟고 있는 상황인 데다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이하 소단협)는 지난 2월부터 매월 1회씩 거리, 업종 등에 따른 배달비를 배달앱 플랫폼별로 조사해 공개하고 있다. 조사는 서울 전 지역 25개 구에서 인구 수 및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동과 낮은 동을 각각 2개씩 선정해 이뤄진다. 배달앱에서 2개 이상 공통으로 검색되는 음식점에서 최소 주문금액으로 주문 시 배달비 차이를 플랫폼별로 비교·분석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조사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배달비는 라이더 수급 상황에 따라 오를 수 있다는 점 ▲배달비는 자영업자가 설정한다는 점 ▲모두가 아는 원론적인 결과만 내놓는다는 점에서다.

우선, 단건이나 묶음 배달 여부에 상관 없이 라이더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비가 비싸질 수 있다. 배달앱 플랫폼이나 배달대행업체 입장에서는 원활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라이더들에게 더 많은 단가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건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은 자영업자들에게 주문건당 일정 부분의 배달비만 부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비용도 라이더 수급이 어려워지면 또 한번 오를 수 있다.

라이더들에게 지급하는 배달비가 오르면 자영업자들이 부담해야 할 배달비가 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라이더들에게 지급되는 배달비 중 일부는 자영업자가 부담하는 배달비다. 자영업자는 이 배달비의 일정 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함께 부담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가맹점들에게 배달비를 일정 수준으로 설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자영업자가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변경할 수 있다.

교촌치킨과 같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일부는 이미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채소 등 원재료값이 폭등하자 이를 배달비에 녹이기도 했다. 음식값이 오른 만큼 소비자들에게 배달비를 더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라이더 수급 상황에 따라 배달비가 달라질 수 있고, 자영업자가 직접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설정한다는 근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매달 의미없는 배달앱 플랫폼 줄 세우기를 단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 한 가지 꼬집을 점은 배달비 공시제를 통해 원론적인 결론만을 내놓는다는 거다.

소단협은 배달비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배달 거리별 분석 결과, 쿠팡이츠는 단건 배달 서비스이지만, 2~3㎞ 미만 거리에서 묶음 배달앱과 배달비가 동일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배달 거리가 3㎞ 이내인 경우 동일 음식점이라도 단건, 묶음 구분 없이 가격 비교 시 더 저렴한 배달서비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미 단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거리에 따른 할증 배달비를 부과하고 있다. 게다가 배달앱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3㎞를 초과한 음식점에 배달 주문을 하는 소비자는 극소수다. 거리 할증료가 붙어 배달비가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가격을 비교해 더 저렴한 배달앱 플랫폼을 이용하면 된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배달앱 플랫폼끼리 배달비를 비교하는 것으로는 이런 원론적인 결과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라이더 수급 현황, 배달비 책정 방식 등의 근본적인 요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더가 부족하고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수박 겉핥기식 배달비 비교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라이더 수급 부족 등 배달비 인상 원인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소단협이 최근 공개한 8월 배달비 조사 자료도 조회수 964회에 그쳤다. 누구나 알 법한 당연한 결론만 내놓는데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하다.

정부가 물가 상승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원론적인 결론만 내놓게 되는 배달비 비교 조사보다는 근본적인 배달비 상승 원인을 파악해 현명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황혜빈 기자 empt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