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한 회당 50~60컷이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 70~80컷이 넘어간다. 누가 강요한게 아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도 아니다. 작가들 스스로가 순위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지금의 상황은 작가 개개인 성향에 맡겨놓으면 노동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작가도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지속가능한 산업 발전을 위해,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어느 업체가 복리후생 차원에서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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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직장인 대비 주중 평균 10시간 초과근무

웹툰 작가 건강권 보장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나혼자만레벨업’의 장성락 작가가 7월 지병으로 사망하면서다. 불과 한달사이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여름빛(필명) 작가는 과로로 유산을 경험했다며 8월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신의 탑’ 작가도 7월 11일부터 건강 문제로 인한 무기한 휴재에 돌입했다. 연재 도중 건강을 이유로 휴재하는 작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 웹툰 작가들이 일하는 시간은 보통 직장인들보다 많다. 2021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는 일주일에 평균 5.9일, 하루 평균 10.5시간 일한다. 보통 직장인은 주 5일 하루 8시간을 일한다. 주중 최대 근로시간도 52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웹툰 작가는 주중 평균 61.95시간 일한다.

특히 데뷔 연도가 최근일수록 창작 활동 시간은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작가들이 데뷔하면서 직면하는 웹툰 산업의 경쟁 강도가 꾸준히 높아진 것이 이유로 분석된다. 웹툰협회 사무국이 여러 웹툰 작가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90% 이상의 작가가 한 주에 60~70컷 분량을 소화했으나 이를 벅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작가 건강이 최우선"

이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의 문제도 아니다. 플랫폼 기업은 오히려 작가 건강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작가가 없다면 웹툰 산업 생태계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은 작가가 휴재를 요청할 경우, 작가가 원하는 일정을 최대한 반영해 휴재를 결정한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창작자 건강과 컨디션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는 5회 연재 시 1회 휴재 같은 정기 휴재, 경조사 휴재, 단기 휴재 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작가 개인 사정과 건강 문제로 인한 휴재 요청이 있으면 정기 휴재 등이 아니어도 논의를 거쳐 원하는 만큼 휴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더 휴재하도록 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지 않고 콘텐츠 제작사(CP)를 통해 계약한 작가는 CP 차원의 복지를 받는다. 웹툰·웹소설 제작사 콘텐츠랩블루는 팀 구성 후 작품을 제작해 5일 근무 주 40시간을 준수하고, 유급 연차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순위 경쟁 막을 제도 마련 필요

그럼에도 웹툰 작가들은 과중한 업무를 호소한다. 누가 시키지 않은 모양새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업무량은 꾸준히 늘어만 가는 모양새다.

관련업계는 순위 경쟁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플랫폼별 순위 산정 기준은 인기순, 매출순 등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더 많은 독자가 본 작품이 상위권에 오른다. 하지만 최근 집단창작 방식으로 고품질 작화에 컷수가 많은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개인 작가는 갈수록 집단창작된 웹툰과 품질 경쟁이 어려워졌다. 특히 스토리, 작화, 분량으로 웹툰을 비교했을 때 작업인원 수 차이는 주로 작화와 분량에서 나타난다.

개인 작가가 집단창작 웹툰과의 경쟁을 위해 사람을 더 쓰거나 작업 시간을 늘려야 하는 셈이다. 작가들도 실제로 사람을 더 쓰는 중이다. 2021 실태조사 결과 작가 단독으로 작업하는 비율(55.9%)이 3년 연속 감소했다. 보조 작가 이용 비율은 56.6%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관건은 인건비다. 인건비 부담으로 사람을 늘리지 못하면 작가 혼자 감당해야 할 양이 많아진다. 업무강도가 오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에 참여한 웹툰 작가들은 "작품 컷수가 적으면 독자 만족도가 낮아 70~80컷 이상 작업할 수밖에 없다"며 "독자가 원하는 컷수 분량이 점점 많아진다"고 답변했다. 계약서에 컷수가 명시돼 있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시장 요구에 맞춰 컷수를 늘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도한 순위 경쟁으로 인해 작가 스스로가 더 많은 분량과 더 좋은 품질을 위해 몸을 혹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급 휴재와 추가 수당, 해결책될까

창작자 단체는 이에 유급 휴재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작가 스스로가 휴재가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플랫폼이 이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보통 직장인들이 유급휴가(연차)를 사용하듯 유급 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작자 단체는 또 계약서에 기재된 상한 컷수 이상의 컷에 대해 추가 수당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통 직장인이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하면 추가근로수당을 받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추가 수당을 통해 작품 완성도를 위해 더 많은 컷을 그리려는 작가가 보조 작가 인건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50회당 2회 휴재권 부여는 제도적으로 당연한 것을 달라는 요구다"라며 "근본적 해결책에 동의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