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차세대 GPU ‘RTX 40 시리즈’를 20일 발표했다. 2년 전 RTX 30 시리즈를 발표한 지 2년 만이다. 그 기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대란과 암호화폐 채굴 대란을 겪으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는 한때 돈 주고도 못사는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런 고난을 겪은 소비자들로서는 이번 RTX 40 시리즈의 출시는 반가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기존 RTX 30 시리즈의 재고 물량에 ‘가격 인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 앞서, ‘엔비디아’를 더욱 주목하게 한 이슈가 있다. 그래픽카드 제공업체 EVGA가 엔비디아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는 엔비디아의 GPU칩으로 그래픽카드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EVGA는 북미 지역을 대표하는 그래픽카드 기업으로, 최근까지 북미 지역 그래픽카드 시장 1위 자리를 거머쥐고 있을 정도로 이 시장의 강자다. 비록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컴잘알 유저들에게는 나름 인정 받는 브랜드다. 특히 암호화폐 채굴 대란 때는 유일하게 가격 폭등의 물살을 타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적정 가격으로 판매하는 혜자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EVGA와 엔비디아의 결별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EVGA의 매출 가운데 78%가 그래픽카드라는 것이다. 한 기업의 캐시카우를 하루 아침에 포기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EVGA 대표 앤드류 한(Andrw Han)이 외신에서 밝힌 "엔비디아와의 결별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엔비디아와 일 하는 것보다는 쉬웠다"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 하다.

EVGA의 주장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GPU의 생산자권장가격(MSRP)을 파트너사인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에게도 출시 시점이 임박했을 때 공개를 해 가격 정책을 펼치기 어렵게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엔비디아가 직접 판매하는 그래픽카드 ‘파운더스 에디션’은 파트너사와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며, 더욱이 가격 경쟁력에서도 불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EVGA의 주장이 전체 파트너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 더욱이 공급과 제조 관계의 구조적 한계일 수도 있다. 국내 한 PC유통업체 관계자는 "어떤 제품군이든 밴더(칩 공급기업)사와 제조사와의 관계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밴더사가 시장 1위 기업이라면 힘은 더욱 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몇 십년 간의 파트너 관계를 단 한번에 끊는 것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이 담겨 있다.

엔비디아는 PC 시장을 몇 단계 발전시킨 대표적인 기업임에는 분명하다. 단순 연산에 장점이 되는 GPU의 구조적 특성을 살려 인공지능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레이 트레이싱과 같은 현실감 있는 그래픽 구현 기술을 사용자들에게 보여줬다.

그러한 기술의 발전과는 달리 파트너사와의 관계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생하는 관계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제품 성능이나 가격 등으로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