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은 태양과 지구, 달이 일직선이 되면서 가장 크고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고 한다. 이번과 같은 크고 완전한 보름달을 보려면 앞으로 38년 후인 2060년에야 가능하다고 하니, 100세를 평균수명으로 할지라도 운이 좋아야 평생 두어 번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희귀한 우주의 볼거리도 모두에게 공평한 건 아니다. 추석을 맞아 조금은 들뜨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름달을 보며 마음 속 깊이 소망하는 바를 기원, 달맞이를 즐겼던 운 좋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어떤 이들은 추석 당일조차 고단하고 힘든 일상의 연속으로 경황없이 보냈을 수 있다. 추석 명절 밤하늘의 보름달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었던 이들 중 생계형 코인 투자자들과 블록체인 프로젝트 현업 종사자들도 상당수 있지 않았을까.

지난 5월,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5위까지 올랐던 루나가 불과 일주일 새 자산가치의 99.99%가 증발해 버리는 대폭락이 발생했다. 일반 투자자는 물론, 가상자산 생태계 내의 대형 투자사와 대출플랫폼, 거래소 모두에 큰 위기가 닥쳤다. 루나에 큰 돈을 투자했던 가상자산 투자펀드 쓰리애로우캐피탈이 가장 먼저 무너졌고, 이후 미국 최대 대출 플랫폼 셀시우스 역시 파산에 이르렀다.

크립토 고래들과 대형 투자사들의 연이은 붕괴로 시장 전체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가상자산도 보다 심각한 추가 하락국면에 접어들었다. 이후 코인으로 자산적 여유를 일궈보고자 했던 투자자와, 블록체인 기반의 신규 프로젝트들, 그리고 수수료로 먹고사는 거래소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수조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던 대형 거래소마저 곡소리를 내고 있는 이 시기에, 개미 투자자들은 탈출구 없는 지옥도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정부는 부활한 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 제1호 사건으로 테라-루나 사태를 다루겠다고 나섰다. 추석이 지나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를 비롯한 6명에게‘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권 대표에게 인터폴 적색수배령이 내려졌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 것이 과연 최선일까. 지난 5년간 정부가 ‘투자자 보호’의 깃발을 드높일 때마다, 정작 ‘투자자’들이 더욱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는 상황적 역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국내법상 가상자산은 자본시장법 제3조의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 2017년부터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크게는 수조원을 넘어서는 수많은 가상자산 사기 사건들이 있었지만, 금융투자상품이 아니었기에 투자자들의 피해를 구제받거나 사기꾼들에게 적절한 처벌이 주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금융투자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은행과 증권사 같은 금융회사는 가상자산시장에 진출할 수 없었다.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가 내려진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나서도, 자금세탁방지를 이유로 국내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블록체인 관련 산업의 직접 진출은 여전히 막혀 있다.

그 사이 야심차게 출발했던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하고 악전고투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조악한 초기개발을 끝으로 마켓메이커들을 동원, 거래소에서 코인 가격을 끌어올리는 일에만 열중하게 됐다.

정상적인 투자시장이 열리지 않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한 프로젝트의 변절이 지금 한국 블록체인 산업의 기본값이 돼버렸다. 사업목적에 블록체인이 들어가 있으면 은행이 법인계좌를 열어주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투자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모두 차단된 작금의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된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고 싶다는 가상자산 투자자가 가장 바라는 건 딱 하나, 가상자산의 가격상승이다. 그러나 사업이 사기로 내몰리는 정합성 없는 규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는 결국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루나 가격폭락을 빌미로 다시 한 번 드높이 올라간 정부의 규제 깃발 아래, 가상자산 생태계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참여자 모두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결국 하늘 높이 떠올랐던 루나(달)는 좀 더 나은 일상의 기반을 염원했던 투자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붉은 홍위병의 시대만을 남겼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jane0725@nate.com
현(現)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 부산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운영위원, 전(前)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업경제혁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