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청계천 인근 도로에는 흡연자들이 다닥다닥 모여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다. 바로 뒤에는 ‘10월 1일부터 금연구역 지정’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들은 어쩌다 이 거리로 내몰린 걸까.

흡연자들이 구매하는 담배 한 갑에는 세금이 포함돼 있다. 이 세금은 2015년 이후 대폭 올랐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담뱃세를 1550원에서 3318원으로 2배 이상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흡연자들이 내는 담뱃세가 매년 1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구역은 줄어드는 모양새다. 서울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 6월 담배꽁초 무단투기 과태료 부과 건수는 1952건으로 전월(1746건) 대비 11% 증가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거둬들인 담뱃세는 다 어디 간 것일까.

정부는 담뱃세의 4분의 1 정도를 국민건강증진부담금으로 쓰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금연교육 및 광고, 흡연피해 예방 및 흡연 피해자 지원 등에 쓰인다. 거둬들인 담뱃세가 10조원이라고 치면 2조5000억원 정도를 여기에 쓴다는 것인데, 나머지 금액으로 흡연부스를 설치하지는 않았으니 막상 담뱃세를 낸 흡연자들을 위해 쓰이지 않은 셈이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직장인이 많은 서울시 중구 내 흡연부스는 단 6개다. 하지만, 이조차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거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인근에도 흡연부스는 찾아볼 수 없다.

여의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골목골목마다 금연구역이라는 표시가 있지만, 갈 곳을 잃은 흡연자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도로에서 버젓이 담배를 꺼내문다. 흡연자들은 흡연할 곳이 없어 서럽고, 비흡연자들은 도로에서 담배 연기를 맡아야 하니 괴로운 실정이다.

흡연자들은 지금까지 낸 담뱃세를 활용해 흡연구역을 늘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흡연자 인권연대가 지난 7월 국민 1000명(흡연자 500명·비흡연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새정부의 금연 정책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담뱃세를 활용해 흡연구역을 확충하는 것을 원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7.9%가 "매우 촉구한다"고 답했고, 뒤이어 33.5%가 "촉구한다"고 답했다. 거리에서 담배 연기를 맡기 싫은 비흡연자들이 꽤 많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흡연 부스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당시 공약은 담뱃세 일부를 활용해 흡연부스 등 구역을 추가하고, 국민건강진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흡연구역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 흡연자들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흡연부스가 조금이라도 생길까 하는 기대감이다. 금연구역을 지정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흡연부스를 설치해 달라는 거다. ‘길빵’은 흡연자에게도 비흡연자에게도 악(惡)이다.

황혜빈 기자 empt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