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4년 4월호에 실린 DRM 기사 이미지 / IT조선 DB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4년 4월호에 실린 DRM 기사 이미지 / IT조선 DB
‘그때 그 시절 IT’는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이하 마소)’의 기사를 살펴보고 IT 환경의 빠른 변화를 짚어보는 코너입니다. 마소는 1983년 세상에 등장한 후 37년 가까이의 IT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IT조선은 브랜드를 인수해 2017년부터 계간지로 발행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IT’ 코너는 매주 주말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음원저작권단체들이 MP3폰을 출시한 LG텔레콤에 음원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음원저작권단체는 LG텔레콤이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짓밟으면서까지 영리를 추구했다고 비판했다."

2004년 3월 12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음원, MP3폰 이라는 키워드가 나온 걸 보면 이런 이슈가 발생되는 이유를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LG텔레콤의 MP3폰이 음악파일의 무단 공유 환경을 조장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LG텔레콤은 휴대폰 안에 저작권보호장치를 내장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불법으로 다운로드 된 MP3 파일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된 상태였기 때문에 LG텔레콤의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2004년 출시된 LG전자의 MP폰 ‘LP-3000’ / IT조선 갈무리
2004년 출시된 LG전자의 MP폰 ‘LP-3000’ / IT조선 갈무리
이번에 다뤄 볼 키워드는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입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콘텐츠에 대한 보호장치가 형편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소리바다와 같은 P2P(Peer to Peer) 사이트에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MP3플레이어, PC 등에서 저작권은 무시한 채 자유롭게 들었습니다.

당시 아이리버, 코원 등의 중소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대기업조차 MP3플레이어를 판매했고, 그 기기에는 DRM 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두가 저작권이 침해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마소 매거진 2004년 4월호에 실린 ‘DRM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기사에 실린 내용이 DRM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줍니다.

"다음 포털 사이트에서 ‘MP3폰에 대한 저작권 단체와 이동통신사의 대립이 첨예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은?’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투표에서 무려 82.1%가 ‘지나친 MP3 사용 제약은 소비자 권리 침해다’라는 입장에 동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4년 4월호 표지 이미지 / IT조선 DB
마이크로소프트웨어 2004년 4월호 표지 이미지 / IT조선 DB
매거진에서는 ‘음반 불법 복제 방지책 무의미하다?’라는 한 컴퓨터 과학자의 논문에 대해서도 간략히 다뤘는데요. P2P 프로그램을 통한 음악파일의 불법 복제 및 배포를 막으려는 음반 업계의 노력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논문을 보면, 세계 최초의 음악파일 공유 플랫폼 ‘냅스터’가 폐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극히 소수의 음악파일 소스 소유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송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고속 인터넷, 인스턴트 메시징 등 다양한 전송 방식은 수많은 음악파일 소유 및 공유자를 양산하기 때문에 절대 불법 복제를 막을 수 없다는 논리죠. 당시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맞는 논리입니다.

(왼쪽부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유튜브뮤직, 스포티파이 / IT조선 갈무리
(왼쪽부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유튜브뮤직, 스포티파이 / IT조선 갈무리
2022년 현재 우리가 음악을 듣는 환경을 떠올려보면 당시의 DRM에 대한 논란과 불법 복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멜론, 벅스, 유튜브뮤직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정당하게 이용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변화는 DRM 시스템의 고도화를 통해 이뤄졌을까요. 어느정도의 영향은 미쳤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 사용 환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정적 요인이 보입니다.

먼저 불법 여부를 떠나 음악파일을 듣기 위해서는 다운로드 받아야 합니다. 그에 반해 스트리밍 앱에서는 원하는 음악을 검색해 곧바로 들을 수 있고, 영상도 볼 수 있으며, 가사, 사람들의 반응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별도의 사이트에 들어가 다운로드 하는 번거로움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음악파일의 진위 여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얼마나 편하게,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하느냐가 사용 환경을 판가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창작에 대한 가치를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그런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소 매거진에 실린 기사 ‘DRM 당신은 누구인가요?’ 또한 그 가치에 대한 인식과 죄책감으로 끝을 마무리합니다.

"제조사들은 많이 팔아야하기 때문에 MP3폰을 출시한 것이 당연한 행동이고, 사용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MP3 파일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휴대폰을 원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용자의 한사람으로써 필자가 갖고 있는 MP3 파일 중에 몇 개나 돈 주고 구입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나 싶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