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는 170여만종의 생물이 있고, 매년 4만종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호랑이와 늑대 등은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국내에서 호랑이나 늑대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없어 실제로는 멸종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달가슴곰 역시 멸종위기 1급 포유류로, 생물종 보존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국립공원공단은 지난 2004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방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반도 반달가슴곰과 동일 계통군의 어린 반달가슴곰을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들여온 뒤에 관련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모여 정성들여 새끼곰을 키웠다. 신선한 과일과 고기외에 필요한 영양제를 사료에 섞여 먹이며 주기적으로 영양 상태를 확인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켰다. 어느 정도 자생력이 생겼다고 판단됐을 때, 독립할 수 있는 훈련을 추가로 진행한 뒤엔 위치 추적기를 달아 지리산 곳곳에 풀어놓았다.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지리산 인근 반달가슴곰 개체 수는 야생에서 태어난 곰까지 포함하면 50마리를 넘어선다고 한다.

한편 같은 반달가슴곰이라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곰들도 있다. 이들은 1980년대 농가 수입증대의 방편으로 정부가 곰 사육을 권장하면서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수입된 곰들과 그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산업동물로서만, 생명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살아있는 상품’으로 간주됐다.

사육곰들의 삶은 대체로 비슷하다. 반달가슴곰이든 다른 외래종이든 2평 남짓한 사육장에서 때로는 살아있는 채로 쓸개즙을 빨리며 희망 없는 생명을 연명하다가 마침내는 웅담과 발바닥, 피, 가죽 등으로의 쓰임을 위해 도축됐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곰 사육 방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산업의 향방은 많이 달라졌다. 변화를 초래한 요인은 88서울올림픽이었다.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나라에서 멸종위기종 곰을 수출판매 한다는 사실에 대내외적인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에도 신경을 써야했던 정부는 곰사육 산업의 정책방향을 전면 전환했다.

1985년 사육곰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1994년‘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곰 수출마저 제한했다. 2026년부터 곰사육 자체를 전면 금지시키고 사육장의 남은 곰들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생츄어리를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게 올해 초다.

사람뿐 아니라 곰도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따라 이토록 다른 삶을 산다.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 개체군으로 선택받은 곰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양육 관리 받다가 자연으로 돌아가 곰의 습성을 존중받으며 삶을 보호받지만, 사육 대상으로 선택된 곰들은 시멘트와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2평짜리 조악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서의 존중이 완벽히 배제된 상품으로만 취급되며 사육되다가 최종에는 도살되거나 버려지는 삶을 산다. 이들의 삶을 가르는 것은 오로지 정부의 정책이다.

블록체인 산업도 비슷한 처지다. 정책의 향방에 따라 국내 투자자들과 기업들의 처지가 결정되고 있다. 지난 5월 테라-루나의 가격폭락 이후 해당 프로젝트의 초기투자자들은 대부분 출국금지 됐다. 권도형 테라폼랩스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권대표를 대신해 검찰수사를 받는 처지다. 애당초 테라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자체가 사기였다는 혐의다.

향후 테라-루나의 위법성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 치열한 법정다툼이 예상되지만, 2019년 상반기에 시작된 사업의 사기성 문제가 이제 와서 새삼스레 제기된 이유는 지난 5월 테라-루나의 가격폭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12월 2일 신 전 대표의 구속영장 심사와 함께 국내 대형거래소에서의 위믹스 상장폐지에 대한 가처분 신청 심문이 진행됐다. 업비트를 필두로 한 DAXA와 위메이드 간 잘잘못을 가리는 와중에 해당 토큰 투자자들만 피눈물을 흘리며 아우성치고 있다.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도통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참여주체들의 책임 범위도 모호하다. 글로벌 산업답게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쉴 새 없이 터진다.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든 국내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법적 책임이 되돌아온다.

그러나 사후의 결과값만을 가지고 초기 참여자들의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신산업에 투자를 할까. 이런 기조 하에서는 미래에 발생 가능한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하다고 확인된 범위에서만 투자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국내 프로젝트들이 투자자를 찾지 못해 아우성 친지 상당기간 되었지만, 아무도 이들의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간이 투자하지 않는 신산업 분야를 정부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신산업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와는 다르다. 역내로 한정되지 않는다.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너무 높고 많은 허들이 있다. 민간투자는 제한되고 정부지원은 까다롭고 영세한 상태에서 한국의 신산업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을 자를 오로지 정부가 선택하는 상황이라면 결국 국내 신산업 프로젝트들은 망국의 유민처럼 해외를 떠돌거나, 철창 안 곰처럼 사육되다 정책이 바뀌면 버려질 운명이다. 바야흐로 신산업 멸종의 시대가 도래했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jane0725@nate.com
현(現)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 부산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운영위원, 전(前)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업경제혁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