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IT’는 소프트웨어 전문 매거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이하 마소)’의 기사를 살펴보고 IT 환경의 빠른 변화를 짚어보는 코너입니다. 마소는 1983년 세상에 등장한 후 37년 가까이의 IT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IT조선은 브랜드를 인수해 2017년부터 계간지로 발행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 IT’ 코너는 매주 주말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2000년대 초반 마소 매거진을 보면 매월 인기 MP3플레이어(이하 MP3P)가 소개됩니다. 파일 저장 용량이 더 늘었고, 더 가벼워졌으며,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매 달마다 출시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때는 MP3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만큼 거의 모든 사람들이 MP3P 하나씩 휴대하고 다녔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들으면 되지, 굳이 MP3P를 따로 가지고 다니나’라고 의아해 할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휴대폰에는 그러한 기능이 없었고, 2004년 이후부터 출시가 되기는 했어도 MP3P만큼 고음질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MP3P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MP3P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아이리버, 코원이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에 절대 뒤지지 않는 시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죠. 그렇다고 해도 이 두 기업에게 전성기는 너무도 짧았습니다. 10년을 넘기지 못했으니까요. 스마트폰의 출현 때문이었죠.
사과를 씹어먹었던 아이리버
아이리버는 당시 한국 벤처기업 신화였습니다. 이 기업의 무대는 전세계였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의 유일한 경쟁 기업은 아이리버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전성기였던 2004년에는 매출액이 4540억원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그냥 1위가 아니라 압도적 1위였고, 세계 시장에서도 1위(플레시메모리형 MP3P 부문)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아이리버는 사업 다각화를 시도합니다. 전자사전, 내비게이션, 블랙박스 등으로요. 그 가운데 전자사전 ‘딕플 시리즈’가 나름 성공하면서 ‘그래도 아이리버’라는 수식어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2013년, 4500억원을 넘던 매출은 900억원(2012년 기준)으로 줄었고, 2000명이 넘던 직원은 100명 이하로 줄었습니다. 아이리버는 그해 절치부심한 결과물 ‘아스텔앤컨(Astell&Kern)’을 내놓습니다. 고급형 오디오 플레이어 ‘아스텔앤컨’의 첫 모델 ‘AK100’은 가격이 70만원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SK텔레콤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플로(FLO)’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사명도 아이리버에서 드림어스컴퍼니로 바꾸게 됩니다. 플로 덕분에 아이리버는 21분기만에 매출 577억원, 영업이익 1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하게 됩니다.
아이리버는 지난 11월에는 올인원 프리미엄 오디오 ‘IA2000’을 출시하는 등 MP3P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음질의 명가 ‘코원’
코원은 이러한 위기를 타개해보고자 이듬 해인 2011년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MP3P ‘D3’를 출시합니다. 음악 및 영상 재생 기능에 특화된 제품이고, 안드로이드 OS라는 차별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의 영역을 파고 들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변해 있었습니다.
이 외에 스마트폰 액세서리, 차량용 블랙박스 등을 출시하며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에 들어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원은 결국 2011년 1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합니다. 매출액이 2010년 대비 55%나 감소했던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겪으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위기였을 겁니다. 코원은 이후 블랙박스 사업을 B2B로 전환하고, 회사 내 사업구조도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습니다. 그 노력 끝에 11분기 만인 2014년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게 합니다.
2016년 1월 코원은 중국 모바일 게임업체 신스타임즈에 인수됩니다. 기존 디지털 디바이스 에서 모바일 게임으로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되는데요. 사실 이 인수전은 신스타임즈의 우회상장 전략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코원은 분사됐고 DAP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코원시스템에서 신스타임즈, 신스타임즈에서 네스엠, 네스엠에서 씨오더블류오엔, 씨오더블류오엔에서 코원플레이까지 지난 6년 간 돌고 돌았던 코원은 지금도 DAP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모바일 게임 비중이 전체 매출의 74%를 차지하고, 멀티미디어 디바이스(DAP, 블루투스 이어폰 등)는 6%에 불과하지만 코원은 지금도 ‘음질의 명가’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듯 합니다.
시대는 늘 변하고 그 변화 속에 있는 기업은 흥망성쇠를 경험하기 마련일 것입니다. MP3P 시장도 크게 다를 바 없죠. 그럼에도 한 시절 조그만 기기 하나로 전세계에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렸던 기업들인 만큼 ‘한국의 IT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