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내놨던 해다. 당시 미디어 간담회에서 아이폰을 소개했을 때 한 기자가 아이폰의 터치스크린 키보드를 두고 ‘별로다'라는 평가를 내놨다고 한다. 이유는 엄지손가락에 비해 터치 패드가 너무 작다는 것. 그래서 자꾸 오타를 낸다는 것이다. 그 때 스티브 잡스의 대답은 이랬다.

"당신의 엄지손가락이 곧 적응을 할 것입니다"

정말 그랬다. 아이폰이 처음 소개됐을 때 경쟁자들조차 물음표를 던졌던 건 당시 세상에 아이폰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빠른 통신망도 없었다. 사람들은 핸드폰에서 키보드를 쓰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앱 개발자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폰은 망했을까?

아니. 반대다. 사람들은 아이폰에 적응하는 것을 택했다. 통신사들은 더 많은 통신망을 구축했다. 개발자들은 새로운 앱과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터치스크린에서 빠르게 타이핑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애플은 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나가고 있다.

이건 비단 애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안데르센 호로위츠의 파트너인 크리스 딕슨은 모든 신기술은 대부분 강한(strong) 기술과 약한(weak) 기술, 이 두 가지가 묶인 쌍으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한다.

강한 기술은 대부분 기술 애호가들의 주말 취미로 시작된다. 당장 돈이 안되기 때문일 지 모른다. 애호가들은 이 기술에 단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기술을 대한다. 애호가들 중 스티브 잡스처럼 큰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은 가능한 자원을 투입해 장기적인 베팅을 하기도 한다.

반면 주류로 여겨지는 분야에서는 보통 이런 기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실험 정신이 강하다면 모를까, 이런 기술을 탐험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들고, 리스크도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친숙하고, 생산적이고, 진지하고, 안전해 보이는 약한 기술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다.

처음에 강한 기술에 빠졌던 기업가들도 때론 신뢰와 용기를 잃고 태세 전환을 하기도 한다. 약한 기술이 주류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보통 실수로 끝난다. 물론 모두가 실패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강한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크리스 딕슨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차용했다. 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적응시키지만 이성적이기보다 불합리한 사고를 하는 듯한 사람은 ‘세상’을 그 자신에 적응시킨다고.

모든 진보는 후자에게서 온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은 분명 기술의 진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약한 기술은 지금의 세상에 적응한다. 그러나 강한 기술은 세상을 스스로 적응시킨다. 진보는 강력한 기술에 달려 있다. 웹 2에 적응된 세상 속 웹 3의 출현을 두고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다. 역사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앞으로 20년 뒤 세상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록할 지 기대해 볼 일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민현 커먼컴퓨터 대표 kimminhyun@comcom.ai
블록체인 기반 인공지능 클라우드 기업 커먼컴퓨터의 대표. 구글에서 7년간 일한 후 'The Internet for AI'를 목표로 커먼컴퓨터를 설립한 인공지능 전문가다. 블록체인 및 인공지능 관련 자문, 멘토 외 트레바리 등 각종 강연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