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사기죄의 성립 요건인 이 의장의 ‘고의'와 김병건 BK그룹 회장에 대한 ‘기망' 행위, 김 회장의 ‘착오'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4부(강규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장은 지난 2018년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모회사인 빗썸홀딩스 지분 인수를 위해 김 회장에게 접근해 계약금 1120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김 회장에 가상자산 BXA(빗썸코인)을 판매해 인수 자금을 충당할 것을 제안하고, BXA를 빗썸에 상장하겠다 약속하며 기망한 것으로 의심했다. 결국 BXA는 빗썸에 상장되지 않았으며, 빗썸 인수 또한 무산됐다.

검찰은 이 의장에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지난해 10월 징역 8년을 구형했다.

BXA 상장, 확약 없었다….‘기망’ 불성립

1심 재판부는 이 전 의장의 상장 확약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전 의장이 코인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상장 확약 사실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기망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밝혔다.

앞서 이 의장측 변호인단은 지난해 결심 공판 최후 진술에서 BXA상장 확약 등에 대한 계약을 한 사실이 없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이날 재판부 역시 이 전 의장에게 빗썸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코인을 상장하겠다는 의사가 없었으며, 김 회장과의 계약서에도 코인 상장을 확약하는 직접적인 조항이 없었다고 봤다.

"빗썸의 상장 포기, 이 의장 탓 아냐…고의 없었다"

재판부는 또한 BXA가 빗썸에 상장되지 않은 것은 이 의장의 의사나 능력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이 의장이 고의로 상장을 무산시킨 것이 아니라 본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빗썸은 지난 2019년 1월 3일 ‘BXA 상장 예정’ 공지를 게시한 바 있다. 당시 빗썸은 한달 내 BXA를 상장하겠다 밝혔다.

그러나 빗썸은 이 의장과의 유착관계가 의심된다는 금융당국의 규제에 상장을 포기했다. 이 의장은 상장이 무산된 이후 김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계약금 및 잔금 1120억원을 받았다.

재판부는 "빗썸이 상장 공시를 개시하고 에어드롭을 실시한 점, 농협의 빗썸코리아에 대한 질의사항, BXA와 빗썸코리아와 관계성을 숨기려 했다는 점 등도 피고인의 능력과 의지와 관련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라고 언급했다.

김 회장, BXA 판매・상장 문제 인지...'착오’ 의심

재판부는 기망행위의 성립 요건인 ‘착오’ 또한 의심했다. 김 회장의 가상자산 투자 지식과 경력이 상당한 만큼 이 전 의장의 말만을 듣고 착오에 빠질 만큼 정보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주식투자능력이 상당하고, 관련 지식도 상당 갖추고 있으며 협상 과정에서도 농협이 빗썸코리아에 한 질의도 곧바로 전달 받았다"며 "피해자가 착오에 빠질 정도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 정보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며 "피고인은 오히려 ICO(가상자산공개)를 하지 않겠다며 일반인을 상대로 한 코인 판매를 경계했다"고 덧붙였다.

빗썸은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빗썸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정훈 전 의장은 빗썸의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