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 ‘전격 Z작전’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요.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손목에 채워진 시계에 입을 가까이 대고 ‘도와줘 키트’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멋진 까만색 스포츠카 ‘키트(실제 모델은 폰티악 파이어버드)’가 나타납니다.
당시 그 손목 시계는 키트만큼이나 ‘가지고 싶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아이템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그 드라마가 스마트워치 개발에 동기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디자인도 점점 진화되고 있어서 요즘에는 기능보다 디자인에 더 끌려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워치나 애플의 애플워치는 모두 2014년에 첫 선을 보였는데요. 이 때를 스마트워치의 본격적인 보급 시기로 기록하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시작점은 이로부터 14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00년 2월 마소 매거진에는 "손목시계형 컴퓨팅 세상이 열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일본 소형 가전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카시오(Casio)의 손목시계형 MP3플레이어와 디지털 카메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2000년 1월에 열린 IT·가전 박람회 ‘CES 2000’에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저장용량은 32MB입니다. MP3 파일의 음악 10곡 정도를 넣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음악을 듣는 동안 시계 화면으로 음악 정보를 볼 수도 있는데요. 단점은 한번에 한 글자씩만 보인다는 겁니다. 노래 제목, 가수를 모두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이 제품은 한번 충전하면 4시간 동안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평소 4시간 내내 음악 들을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번 충전으로 하루를 채 못 사용할 것 같습니다. 가격은 250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30만원 정도입니다.
카시오는 당시 전자 손목시계 안에 고도계, 온도계, 습도계, 전자 나침반, 심장 박동 측정기 등의 기능을 넣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연동을 제외하면 지금의 스마트워치 못지 않습니다.
하지만 와치폰은 당시의 휴대폰을 손목에 올려놓은 수준이고, 통화 시간은 90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참고로 이 제품은 삼성전자에서 프로젝트 성격으로 개발한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마소 매거진은 앞으로 손목시계형 컴퓨터가 나올 것이라고 호언장담 하면서 기사를 마무리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로 스마트워치의 초기 버전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4년이 돼서야 스마트워치다운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몰랐을 뿐 그때 이후로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모토로라 등의 휴대폰 제조기업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스마트워치 개발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제품을 만들면서 분명히 스마트워치의 한계성을 느꼈으면서도 언젠가는 전격 Z 작전에서 키트를 부르는 시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