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형토큰(STO·Security Token offering) 제도화를 앞두고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STO 발행을 둘러싸고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 부산시가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증권가는 유통 시장 진출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은 긴장한 눈치다. 자칫 전통 금융권에 미래 먹거리를 뺏길 수 있어서다.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는 증권사 인수를 논의하는 등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STO, IPO·ICO 장점 살리고 단점 줄이고…일본은 2020년 제도화

증권형 토큰이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증권처럼 발행한 토큰을 말한다. STO는 신규주식상장(IPO, Initial Public Offering)과 가상자산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의 중간 형태를 띤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더욱 쉽게 자금을 조달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소유자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불법 자금을 줄이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다. 또 자산을 세분화해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시간이나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다.

가까이 일본 증권업계는 오랜 침체기를 겪다 STO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5월 증권형 토큰에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 규제 테두리 안에서 시장 육성을 추진했다. SBI홀딩스는 자회사 주식을 토큰화해 발행했고, 노무라증권·SBI증권·미쓰비시UFJ신탁은행 등은 수익증권 발행신탁의 토큰을 공모 형태로 모집했다. SMBC그룹과 SBI그룹은 대체거래소의 형태인 오사카 디지털 거래소를 개설해 올해부터 증권형 토큰을 취급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카사코리아, 세종텔레콤, 루센트블록, 엘리시아 등이 규제 샌드박스 제도로 부동산 STO를 발행한 사례가 있다. 나아가 금융위원회는 2021년부터 STO 제도화를 추진, 오는 19일 첫 결실을 맺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금융규제 혁신회의를 갖고 STO 유통과 발행을 논의한 후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STO거래를 위한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한다. 증권형 토큰은 투자권유 규제, 불건전영업행위 금지 등 영업행위 규제와 과당매매, 자기거래, 쌍방대리, 선행매매 금지 등 이해상충 방지 규제 등을 적용받게 된다.

2030년 STO 시총 163조달러 전망도…증권사 시장 선점 채비 분주

증권사들은 STO 장외거래를 중개할 전망으로, 시장 선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9월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증권형 토큰 규율체계 정비방향’에 따르면 STO는 예탁결제원의 등록심사를 거친 경우에 한해 발행할 수 있다. 유통시장에서 장외시장은 증권사가, 장내 시장은 한국거래소 디지털증권 시장이 관리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부산시와 금융투자협회가 한국거래소의 역할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자산 거래소(ATS) 설립에 속도를 내면서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STO 건수는 지난해 3000억달러(약 40조원)를 기록했다. 2030년까지는 무려 16조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재현 람다256대표는 최근 사업 로드맵 발표 자리에서 STO 시가총액은 2027년 27조달러, 2030년 163조달러까지 성장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KB증권은 최근 채용 공고를 통해 디지털 자산 관리 인력을 채용 중이다. 앞서 플랫폼 개발에 착수, 블록체인 연동 테스트도 완료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이드라인에 맞춰 플랫폼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밖에 한국투자증권, 키움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SK증권 등도 STO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타격 불가피…증권사 인수 땐 경쟁 우위

전통 금융권의 시장 진출에 가상자산 업계는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STO가 시행되면 가상자산 거래소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되면 상장 폐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상장 폐지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증권형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장 폐지를 결정할 경우 투자자 피해가 발행할 수 있어, 정부가 STO제도의 연착륙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가이드라인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법무법인을 통해 STO 해당 여부를 검토한 후 닥사를 통해 금융위원회와 논의하는 방식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조율하는 시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증권형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완성될 때까지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를 일정 기간 유지시킬 것으로 보인다"며 "대체거래소 설립 기관에 대한 정책적 결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가 국내 증권사를 인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기존 가상자산 운영 플랫폼 업력을 활용하면 증권사보다 시장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증권과 가상자산 거래의 특성과 투자 성향은 매우 차이가 크다. 만약 가상자산 거래소가 직접 증권형 토큰 유통 시장에 참여한다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실제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경우 시장 독점도 가능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