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을 통해 산업을 지원하겠다."

이 말은 어떤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든 들을 수 있는 국회의원의 단골 멘트다. 허은아 의원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1월 19일 개최한 ‘메타버스 산업 기반법 제정 토론회’에서도 똑같은 말은 되풀이됐다.

문제는 말처럼 실천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는 이미 1월을 정당 간 대치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로 보냈다. 설날 연휴에는 ‘설 민심’을 두고 또 싸웠다. 정쟁 때문에 국회가 처리할 일이 미뤄진 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유독 상임위 중에서도 정쟁으로 인한 파행을 자주 겪었다. 20대 과방위는 법안처리율 26%다. 국회 전체 처리율 36.6%를 밑돈다. 입법 실적이 낮아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도 붙었다. 21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과방위 법안처리율은 26%다. 전체 법안처리율 28%보다 낮다. 접수된 748건의 법안 중 194건이 처리됐다. 554건이 상임위에서 계류하고 있다.

과방위에 묶인 현안은 여전히 많다. 당장 메타버스 산업계가 염원하는 메타버스 기반법은 지난 한 해 동안 김영식 의원안, 조승래 의원안, 허은아 의원안 등 3종이 발의됐다. 3종의 법안은 지난해 12월 15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하지만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만 참석한 반쪽 의회여서다. 당시 여야는 2023년 예산안을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여야 어느 한쪽에서 메타버스법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영식·허은아 의원은 여당, 조승래 의원은 야당이다. 의원들은 또 메타버스법의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업계와 학계도 하루빨리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방위를 넘지 못했다. 과방위를 넘으려면 3종의 메타버스법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과방위 같은 국회 상임위는 동일한 취지의 법을 병합 심사한다. 병합 심사는 의원들이 법안 세부 내용 중 비슷한 부분은 합치고 의견이 다른 부분은 조율해 하나의 위원회 대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과방위 회의는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논의를 시작해야 결과가 나오는데 논의 시작이 미뤄진다. 과방위는 홈페이지에 기재된 일정을 보면 지난해 12월 27일이 마지막이다. 미국 전시회 ‘CES 2023’ 출장이나 설 연휴를 감안해도 한 달 동안 공식 일정이 없었던 셈이다.

메타버스법은 과방위,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한다. 본회의를 통과해도 산업계에 적용되는 시점은 한참 뒤다. 법에서 정하지 못한 세부사항을 시행령으로 규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메타버스법은 통과돼도 시행령을 준비하고 그걸 실제 산업에 적용하면 1~2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당장 1월 중 법이 통과해도 내년쯤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2월 임시국회도 공회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어서다.

현 상태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김상균 경희대 교수는 "인류의 기술 성과는 가속도가 붙는다"며 "지난 100년 간 변화한 것은 앞으로 10년 만에 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화 속도가 빨라 산업이 당장 내년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메타버스 산업 틀을 갖춰가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다. 국회는 정쟁을 핑계로 현안 논의를 회피하면 안 된다. 메타버스법뿐 아니라 다른 ICT 입법과제도 한가득이다. 하루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