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만큼 성능 발전이 빠른 제품도 없다. 화소 수와 해상력의 증가는 물론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이 해마다 성능을 업그레이드 한다. 철 지난 제품은 중고 시장에서 몇 만원 정도에 판매되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사는 ‘귀한 몸값’ 자랑하는 디지털카메라들도 있다. 이런 제품은 대부분은 출시된 지 10년도 넘어 성능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의 보급형 카메라보다 뒤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중고 사이트에 올라오면 명절에 귀성 열차표 구하듯 후다닥 판매완료 된다. 이유는 ‘다름’을 보여주는 디자인과 성능, 사진 결과물의 독특한 색감, 차별화 된 브랜드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 사이트 잠복과 광클(매우 빠른 속도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일)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구매할 수 있는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디지털카메라’ 5종을 소개한다. 참고로 제품 선정은 카메라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중고 품목 및 회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했다.

강렬한 레드 ‘콘탁스 i4R(Contax i4R)’


콘탁스 i4R / IT조선 DB
콘탁스 i4R / IT조선 DB
콘탁스 i4R은 향수병을 이미지화 한 디자인으로 얼핏 보면 카메라인지 모른다. 실버, 레드, 블랙 색상이 있는데, 이 중 레드 색상 제품이 지금까지 인기를 얻게 한 요인 중 하나다. 콘탁스라고 하면 일본의 명품 카메라 브랜드다.

i4R의 가장 큰 매력은 특유의 색감이다. 전체 색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빨간색은 강렬하게 부각시켜 준다. 짧은 배터리 수명(최대 150장 정도 촬영 가능) 때문에 설령 지금 구매한다고 해도 배터리 수급이 안돼 사용이 어려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색감을 맛보기 위해 지금까지도 사진 애호가들은 매물을 기다리고 있다.

i4R은 2005년 출시됐고, 당시 가격은 50만 ~ 60만원이었다. 현재 중고 사이트에서 45만 ~ 50만원에 거래되고 있지만 두어달에 한번 씩 매물로 올라온다. 참고로 콘탁스의 모든 디지털카메라(TVS-D, 콘탁스 ND 등)는 i4R처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괴물이라 불리던 ‘올림푸스(Olympus) E-100RS’


올림푸스 E-100RS / IT조선 DB
올림푸스 E-100RS / IT조선 DB
광학 10배 줌, 초당 연사 속도 15매, 최대 셔터스피드 1/10,000초. 2000년 디지털카메라 수준으로 본다면 이 정도 사양은 고성능이 아니라 괴물급이라 불려야 맞다. 당시 디카라고 하면 ‘필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E-100RS는 150만 화소의 1/2인치 이미지 센서가 적용됐고, 38-380mm의 광학 줌 렌즈를 장착했다. 여기에 광학식 흔들림 보정까지 탑재했는데, 흔들림 보정 기능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고성능 카메라에서부터 탑재된 기능으로 당시 올림푸스가 E-100RS에 얼마나 혼을 갈아넣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출시 당시 가격은 150만원대였고, 현재는 판매 가격이라고 정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왜냐하면 매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프린터 명가가 만든 디카 ‘엡손(Epson) R-D1’

엡손 R-D1 / 엡손
엡손 R-D1 / 엡손
광학 산업에서 잔뼈 굵은 기업들이 즐비한 카메라 시장에서 프린터 기업이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다는 건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대와 의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2004년 엡손은 RF카메라 ‘R-D1’을 내놓는다. 당시 똑딱이라고 불리는 콤팩트 디카 또는 DSLR이 대세였던 때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RF카메라를 출시했다는 건 애당초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이다.

실제 엡손은 색 재현력이 우수한 프린팅 기술을 카메라의 화상 처리 기술로 발전시켰다. 결과물은 우수한 색재현력과 더불어 필름카메라를 연상케하는 독특함이 있었다.

렌즈는 EM마운트를 채용해 라이카의 M마운트와 호환할 수 있었다. 현재 중고 사이트 가격은 130만 ~ 150만원대이지만 판매글보다 구매를 원하는 글이 월등이 많은 상황이다.

라이카의 눈이 들어간 ‘파나소닉 루믹스(Panansonic Lumix) DMC L1’

파나소닉 루믹스 DMC L1 / IT조선 DB
파나소닉 루믹스 DMC L1 / IT조선 DB
파나소닉과 라이카는 오래 전부터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카메라 산업이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 라이카에게는 화상 처리 기술이 필요했고, 파나소닉은 라이카의 광학 기술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파나소닉 루믹스 DMC L1’이다.

이 제품은 DSLR 카메라이면서도 독특한 RF카메라 모양을 하고 있다. 포토미러라는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설계로 DSLR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펜타프리즘 공간을 없앨 수 있었다. 포토미러는 렌즈로 들어오는 피사체를 측면의 뷰파인더로 반사시키는 구조다.

DMC L1은 독특한 구조뿐만 아니라 라이카 렌즈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 카메라와 함께 판매된 렌즈가 라이카 D-Vario Elmarit 14-50mm F2.8-3.5 ASPH다. 이제는 형제 카메라인 ‘라이카 디지룩스 3’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카메라가 됐다. 중고 사이트에서 30만 ~ 50만원대 판매된 바 있지만 2년 전 매물이고, 현재는 판매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사실상 중고 가격이 무의미하다.

파나소닉의 화상처리 기술이 들어간 ‘라이카 디지룩스(Leica Digilux) 3’

라이카 디지룩스 3 / Shopify
라이카 디지룩스 3 / Shopify
앞서 언급한대로 파나소닉과 라이카는 2000년 초반부터 기술 협력을 했고, 그 결과로 얻은 카메라 설계 또한 공유했다. ‘라이카 디지룩스 3’는 앞서의 파나소닉 루믹스 DMC L1과 쌍둥이에 가까운 제품으로 외형과 성능 모두 동일하다고 봐도 무관하다. 다만 결과물은 라이카만의 색감 설정이 적용됐다.

라이카는 전통적으로 거의 모든 제품을 RF카메라 구조로 제작하는데, 이 제품에서는 RF카메라 외형을 가져가면서도 DSLR 방식을 채택한 나름 특별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렌즈 역시 외형은 약간 다르지만 파나소닉과 동일한 제품을 기본으로 장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카 렌즈가 더 인기 있었는데, ‘LEICA’라는 빨간색 로고가 주는 강렬함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고 사이트에서 70만원대 판매된 바 있지만 1년 전 거래이고, 이 제품 역시 현재 판매글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