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애플페이를 한국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공지 드리겠습니다."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의 한국 출시가 공식 확정됐다. 짧고 굵은 애플의 공지에 애플페이 도입을 학수고대하던 국내 아이폰 충성 고객들의 마음이 설렌다. 2014년 애플페이 첫 출시 후 9년의 기다림 끝에 듣는 소식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가 두손 들고 환영에 나선 애플페이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소비자 친화는 없고 일방통행만 반복하는 애플의 행태가 뇌리에 남아서다.

애플페이 출시 공지가 나오기 6일 전, 서울 서초동에서는 애플팬들을 분노케 한 판결이 있었다. 소비자들은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풀고자 집단소송을 했는데,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2일 법정에서 구체적인 판결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소송 비용을 소비자들이 모두 부담토록 했을 뿐이다.

재판부의 판단과 별개로 국내 소비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애플이 다른 국가에서는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2020년 3월 미국에서 구형 아이폰 사용자 한 명당 25달러(3만1400원)씩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총액은 최대 5억달러(6300억원)로 추산됐다. 2020년 11월에는 같은 소송을 제기한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미국 34개주에 총 1억 13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칠레에서 당한 집단 소송에서는 2021년 4월 총 25억페소(38억원)를 배상했다.

반면 애플은 한국에서 기를 쓰고 소비자를 상대로 재판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1심에서 승소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선심쓰듯 애플페이 출시 공지가 나왔다. 비난은 환호로 바뀌었다.

한국만 ‘봉’이 되는 사례는 또 있다. 애플은 3월부터 아이폰13을 비롯한 모든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의 배터리 교체비를 인상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의 인상 폭이 크다. 미국에서 아이폰13과 아이패드 배터리 교체 비용은 20달러(2만5000원) 높아지지만, 한국에서는 아이폰은 3만 600원, 아이패드는 5만 3000원 올랐다.

국내 이통사에 광고·수리비를 떠넘기는 ‘갑질’을 벌인 애플코리아가 2021년 경쟁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마련한 100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이 아른거려서일까. 애플이 어떤 꼼꼼한 기준으로 환율을 책정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애플은 애초 한국 소비자에게 친화적인 적이 없다. 아이폰 국내 출시 뒤 10년쯤 만에 들어온 애플스토어, 아이폰 3차 출시국 등 한국 시장을 푸대접 한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2023년에야 국내 도입이 확정된 애플페이 역시 애플 스스로 카드결제 수수료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을 적극 기울이지 않았기에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웹툰 ‘송곳’에서 회사원 이수인은 노무사 구고신 소장에게 "프랑스 사회는 노동조합에 우호적인데,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 우리 회사는 왜 노조를 거부하느냐?"고 묻는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구 소장은 답한다.

애플은 진심으로 한국 소비자를 위해 애플페이 출시를 결정했을까.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 해외시장 대비 불합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까. 애플도, 애플팬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알지만 되묻게 되는 요즘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