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가 중국 CATL의 북미 시장 상륙을 돕는다. 포드가 합작사 지분 100%를 소유해 중국산 배터리와 소재·부품의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인플레감축법(IRA)을 교묘히 피해가는 전략이다.

이는 한국 기업에 쏠린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 하기 위한 포드의 결단으로 풀이된다. IRA를 기회로 삼아 북미 시장에 전력을 쏟는 K배터리 기업에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블룸버그통신은 11일(현지시각) 포드와 CATL이 미국 미시간주 남서부에서 이르면 다음주 합작공장 설립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합작공장엔 35억달러(4조 4400억원)가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포드는 CATL의 지분이 없는 합작사를 만든다. 포드가 기반 시설과 건물 등 공장 지분 100%를 소유하고 포드 소속 노동자들이 배터리를 생산하며, CATL은 자본투입 없이 기술적인 역할을 맡는 새로운 기업 구조 형태다.

북미 시장은 사실상 중국 배터리 기업의 미개척지다. 다만 포드가 2022년 7월 자사 전기차 '마하-E' 모델에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팩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시간주에 앞서 버지니아주를 합작공장 부지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륙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왔다. 중국과 연관된 광물 등 원료·소재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는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IRA 규정을 어떻게 비껴갈 것인지가 관건으로 떠오른 바 있다.

포드와 CATL의 이번 방안은 신규공장이 CATL로부터 직접적인 투자를 받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IRA의 세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방안이 IRA를 순조롭게 비껴갈 경우 CATL 등 중국 배터리 기업에는 글로벌 영토확장의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이 높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추가로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되면 ‘삼원계(니켈·코발트·망간 등 원료)’ 배터리가 주력인 K배터리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RA 시행을 믿고 북미에서 시장 확보에 여념이 없던 K배터리는 중국 기업의 위협에 북미 원자재 공급망 구축 등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LFP 배터리는 양극재로 리튬과 인산철을 배합해 쓴다. 겨울철 등 저온에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코발트와 니켈 등이 들어가지 않아 양산이 쉽고 안전성이 높다. 소재 특성상 상대적으로 가격도 싸다. LFP 배터리 가격은 삼원계 배터리 대비 20~30%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온 전기차배터리 NCM9이 탑재된 미국 포드 F-150 / SK온
SK온 전기차배터리 NCM9이 탑재된 미국 포드 F-150 / SK온
SK온은 올해 포드와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 생산시설 완공을 위한 본격적인 투자를 집행한다. 7일 2022년 4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 IRA과 관련해 세부 시행규칙이 발표되면 올해부터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SK온은 IRA 시행에 따라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최대 4조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2022년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IRA는 우리에게 굉장히 좋은 사업 기회다"라며 "오랜기간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주요 전략 업체와 현지화를 진행하며 탈중국화 대비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2020년부터 호주 광물업체 QPM으로부터 6000톤의 니켈을 공급받고 있는데, IRA의 구체적 내용이 나올 때까지 상황을 예의주시할 방침이다.

IRA는 지난해 12월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다. 미 재무부는 최종안 시행을 3월 말로 연기했다. 가이드라인의 항목이 최종안에서 변경되거나, 세부요건이 추가돼 포드의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RA 내 배터리 광물·부품 세부 요건 확정안에 따라 포드의 구상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포드의 전기차 로드맵은 LFP배터리로 전환을 가속화 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산 배터리가 북미 시장에 침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