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인 중국 CATL이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를 통해 북미 시장에 진출한다. 합작사가 아닌 기술제휴 형식으로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한국 기업에 유리했던 IRA의 중국 배터리 배제 원칙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LG와 SK는 북미 현지 소재 공급망을 강화해 기존대로 IRA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향후 IRA 내 배터리 광물·부품 세부 요건이 추가돼 포드와 CATL의 구상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K배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조를 이어간다.

IRA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은 2023년부터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한 광물을 40% 이상 적용한 배터리를 장착해야 세액공제 보조금(대당 7500달러)을 받을 수 있다. 이 비중은 매년 10%포인트 올라 2027년엔 70%까지 높아진다. 배터리 부품은 2023년부터 북미산을 50% 이상 써야 한다. 2029년엔 100%로 올라간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빌 리(Bill Lee) 테네시 주지사가 LG화학 양극재 공장 설립 MOU를 체결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LG화학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빌 리(Bill Lee) 테네시 주지사가 LG화학 양극재 공장 설립 MOU를 체결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 LG화학은 최근 국내 전지 소재 업체 중 최초로 북미산 리튬정광을 확보했다. 리튬정광은 리튬 광석을 가공해 농축한 고순도 광물로 배터리 핵심 원료인 수산화 리튬을 추출할 수 있다. 북미산 리튬 정광을 사용하면 미국 IRA에 따른 세제 혜택 기준을 충족하고, 이차전지 핵심 광물의 지역 편중을 완화는 데 도움이 된다.

LG화학은 17일 미국 광산 업체 피드몬트 리튬과 총 20만톤 규모의 리튬 정광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피드몬트 리튬은 캐나다 광산에서 나오는 리튬정광을 올해 3분기부터 연간 5만톤씩 4년간 LG화학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는 리튬 3만톤쯤을 추출할 수 있는 양으로 고성능 전기차 50만대쯤에 들어가는 규모다.

LG화학은 피드몬트 리튬과 7500만달러(96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 계약도 체결했다. 지분 6%쯤을 확보한 것인데, 퀘벡 광산의 리튬정광 외 피드몬트 리튬이 미국에서 생산하는 수산화리튬 물량 연 1만톤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얻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핵심 시장인 미국에서 선제적으로 원재료를 확보해 고객에게 IRA 기준을 충족한 제품을 제공하는 등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할 것이다"라며 "전기차·배터리 업체와의 공동 메탈 투자를 포함한 다양한 파트너십 구축을 추진하며 전지 소재 시장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LG화학은 지난해 11월에 4조원을 투자해 연산 12만톤의 미국 최대 규모 양극재 공장을 짓는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 170만㎡ 부지에 30억달러(4조원) 이상을 단독 투자해 공장을 짓고, 연간 12만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는 연간 고성능 순수 전기차 120만대분의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미국 내 최대 규모다.

테네시 양극재 공장은 내년 1분기에 착공해 2025년 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이후 생산라인을 늘려나가 2027년까지 연산 12만톤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11월 미국 컴파스 미네랄과 배터리 양극재 핵심 소재인 탄산리튬의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을 통해 2025년부터 6년간 컴파스 미네랄이 생산하는 탄산리튬(연간 1만1000톤 예상)의 40%를 공급받는다. 연간 4400톤 규모다. 양사는 하이니켈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 공급계약도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우르빅스社 (Urbix)의 사업장에서 직원들이 흑연 정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 우르빅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우르빅스社 (Urbix)의 사업장에서 직원들이 흑연 정제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 우르빅스
SK온도 최근 미국 소재 업체 ‘우르빅스’와 배터리 음극재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했다고 1월 19일 밝혔다.

우르빅스가 정제한 흑연을 바탕으로 한 음극재를 SK온이 개발중인 배터리에 적용한 뒤 그 성능을 함께 연구하고 개선해 나간다. 협업 기간은 2년이며 연장될 수 있다.

SK온은 개발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우르빅스로부터 음극재를 공급받아 미국 내 SK온 배터리 공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SK온은 안정적인 원소재 수급을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양극재 핵심 원료인 리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2022년 칠레 SQM, 호주 업체들인 레이크 리소스, 글로벌 리튬과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음극재의 경우 2022년 7월 호주 시라사와 천연 흑연 수급을 위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사진 왼쪽)과 김준형 포스코케미칼 사장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포스코케미칼
최윤호 삼성SDI 사장(사진 왼쪽)과 김준형 포스코케미칼 사장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포스코케미칼
‘수익성 위주 질적 성장’ 기조를 이어가는 삼성SDI 역시 ‘탈(脫)중국화’를 위한 소재 공급망 확보에 나서는 중이다.

삼성SDI는 1월 30일 포스코케미칼과 전기차 배터리용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2032년까지 10년간 40조원 규모의 양극재를 공급받는 계약이다.

삼성SDI는 포스코케미칼로부터 공급받은 양극재로 생산한 배터리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 등에 공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