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처우개선과 업무범위 확대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로 직행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사협회(간협)가 각각 신임 회장 선출 및 위원회 재구성을 단행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의료계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결집을 유도하고 효과적인 투쟁을 예고하는 한편, 간호계는 간호법 최종 통과를 넘어 시행령 법체계가 자리잡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박명하 신임 회장 비롯해 비대위 구축한 범의료계…대규모 결사항쟁 예고

범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으로 박명하 서울시의사회 회장을 선출했다. 이어 의협 대의원회는 운영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규모와 활동 기간 등 세부 사항을 결정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갖고 간호법안 폐기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간호법·의료인면허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갖고 간호법안 폐기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뉴스1
의협은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중심 체제로 전환해 총력전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의료계는 분열하지 않고 한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 모든 직역이 비대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50명 이내로 구성되는 비대위는 의결기구 역할을 맡는 집행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 조직으로 투쟁위원회와 조직강화본부, 대외협력본부, 홍보본부, 지원본부를 구성해 역할을 분담했다. 시도의사회장들은 자문단으로 합류했다. 현재 완료된 비대위원은 20명으로, 전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참여자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새로 선출된 박명하 신임 회장은 ‘의사 총파업’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극단의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의 기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쟁위원장을 겸임하고, 투쟁위원회 안에 긴급대응팀도 운영하기로 했다. 또 국회 동향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서울시의사회와 경기도의사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동욱 전 경기도의사회장을 집행위원으로 인선 했는데, 경기도의사회가 2년 넘게 회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어 이번 비대위 결정은 각 단체들에 힘을 고루 분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의협 대의원회는 물론 집행부와도 협력해 단일대오를 형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고유사업 예비비로 4억원을 비대위 투쟁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했으며, 의협 집행부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박 위원장은 "서울시의사회를 비롯해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와 협력해 빠르게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추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며 "국회 본회의에서는 모든 국회의원이 표결에 참여한다. 지역별로 조직 역량을 강화해 전국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영경 신임 회장 선출한 간협…"본회의 넘어 간호법 자리잡도록 노력"

간협도 제39대 회장으로 김영경 부산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를 선출했다. 제1부회장으로는 탁영란 한양대학교 교수, 제2부회장에 손혜숙 현 대한간호협회 이사가 각각 선출됐다. 당연직 부회장은 협회 정관에 의해 앞으로 선출될 병원간호사회장이 선임된다.

간협은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를 통해 간호법 본회의 통과와 더불어 시행령 법체계가 완성되도록 총력전을 펼칠 것이라 다짐했다. 특히 27일에 열린 ‘제90회 정기대의원총회’에는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 서정숙 의원, 최연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남인순 의원, 허종식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정기대의원총회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와 국민의힘 주영호 원내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 조경태 의원, 임병헌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이용선 의원 등이 죽전을 보내 간호법이 여야 의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김영경 신임회장은 "간협 설립 100주년을 맞아 후배들이 개선된 간호 환경에서 간호전문직에 대한 자긍심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일하도록 토대를 마련하겠다"며 "그동안의 법과 정책 달성을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새 국면 맞이한 간호법 갈등…대규모 범의료계 VS 간호계 정면충돌 불가피

범의료계와 간호계가 각각 신임 회장 선출과 더불어 새로운 위원회 구성을 마무리 함에 따라 간호법 갈등 양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범의료계는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점에 대해 국외 입법사례를 들며 진실 공방을 펼치는 한편, 입법 절차를 문제 삼을 예정이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특히 범의료계는 간호법 제정은 입법 과잉이자 간호사들의 이기주의, 직역 간 갈등 소재라며,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처우개선 등을 별도로 규정할 게 아니라 간호계의 요구사항을 의료법 등 개정을 통해 충분히 반영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간호조무사는 간호법의 간호사 업무 영역인 ‘간호사가 수행하는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가 간호사가 간호조무사를 지휘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임상병리사 등 의료기사 단체는 자신들 직역을 간호사가 침범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간호법을 반대하고 있다.

반대로 간호계는 현행 의료법이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경제 수준 등으로 달라진 보건의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건강관리 영역이 바뀌고 간호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간호사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협은 간호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3개국 등 세계 96개국에서 별도로 제정됐다는 점을 강조 중이다. 이에 의협은 간협이 유럽국가간호연맹(EPN)의 26개국을 한데 묶어 법 적용이 되는 것처럼 일괄 계산했다며 비판했다.

치열한 대립 속에 간호법은 이르면 3월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으며,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해 부의 여부를 정해야 한다.

만약 여야가 3월 9일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간호법 제정안은 이후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의석 수가 많은 야당이 단독 처리를 감행할 가능성이 존재해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간호법 제정된다 해도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 양상이 펼쳐진 다는 점이다.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간호사의 역할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의료계 관계자는 "간호법 본회의 직회부로 인해 법안 제정을 저지하고자 하는 범의료계 측이 상당히 불리해 진 것은 사실이다"며 "다만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에 새롭게 구성된 조직체계 아래에서 새로운 방식의 투쟁으로 상황을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