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쉴더스 지분 매각을 매듭지은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다음 투자 대상으로 반도체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반도체 시장이 하강 국면을 지속 중이지만 투자사로서는 적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박정호 부회장이 지켜보는 곳은 지난해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를 노린 반도체 설계(IP) 기업 ARM이 아니다. ARM의 대항마로 떠올른 오픈소스 아키텍처 ‘리스크파이브(RISC-V)’를 보유한 ‘사이파이브’가 1순위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2월 2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간담회에서 EQT-SK스퀘어의 SK쉴더스 공동경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SK스퀘어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2월 2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간담회에서 EQT-SK스퀘어의 SK쉴더스 공동경영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SK스퀘어
박정호 부회장은 2월 28일(현지시각)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개최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한 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어 2022년 검토에 나선 ARM 인수에 대해 "지난해 하반기 ARM의 실질적 소유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일본에서 만난 당시, 그는 ARM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절대 팔지 않을 거라고 했다"며 "이때 ARM 중립지대화(컨소시엄 형태 인수)를 위한 노력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손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야심차게 거래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기거나 할 때 다시 ARM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 부회장은 곧바로 RISC-V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현재 세계 저전력 반도체 IP의 90%쯤은 ARM의 코어IP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ARM의 코어IP는 수정이 어렵고 로열티 부담이 있다. 박 부회장이 ARM 지분 투자에 나서려 했던 이유다.

여기에 꾸준히 대항마로 떠오른 오픈소스 설계자산이 RISC-V다. RISC는 x86 아키텍처(CISC)와 달리 축소명령어집합컴퓨터(RISC) 기반의 최적화된 CPU 아키텍처다. RISC-V는 무료 개방형명령어집합(ISA)으로 비용 없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공개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많은 기업이 RISC-V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를 ARM IP의 대체재로 올려야 한다는 노력에도 공감하는 편이다"라며 "퀄컴 등 여러 CEO들과 관련 사안을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RISC-V를 보유한 곳은 2015년 설립된 사이파이브다. 박 부회장의 RISC-V 언급이 사실상 사이파이브 인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셈이다.

사이파이브는 인텔이 2021년 20억달러를 제시하며 인수 시도를 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대신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혁신기금(Intel Foundary Services Innovation Fund)의 투자를 받아 자사 시스템온칩(SoC)을 인텔 4공정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이미 퀄컴, 인텔, SK하이닉스, AMD, 삼성벤처투자 등으로부터 시리즈 투자를 유치했다.

박 부회장은 실제 SK스퀘어가 고려하는 다음 투자 종목으로 반도체를 꼽았다. 그는 "반도체 활황에서는 투자 기회가 적었는데,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은 지금이 오히려 투자를 하기엔 적기다"며 "SK스퀘어는 무차입회사라 레버리지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고 강조했다.

바르셀로나=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