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국내 주요 금융지주가 배당 또한 역대급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형 은행의 성과급 잔치는 물론, 배당 확대까지 지적하고 나선 상황. 하지만 대형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들은 주주환원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한, KB, 하나,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총 배당액은 4억41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3조7505억원) 대비 7.8%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순익 사상 최대에 배당금도 사상 최대

배당금 증가는 넉넉하게 곳간을 채운 덕분이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총 15조8506억원으로 전년(14조5429억원) 대비 8.9%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배당성향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4대 금융지주의 평균 배당성향은 25.45%로 전년(25.83%) 대비 소폭 줄었다. 하나금융지주가 26%에서 27%로 1%p 확대됐고 우리금융지주도 25.29%에서 26%로 늘어났다. KB금융은 26%로 전년과 같았다. 신한금융은 26.04%에서 22.8%로 낮아졌다.

농협금융지주는 아직 2022 회계연도 배당액을 확정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위기대응 차원에서 배당 성향을 20% 이내로 제한하라는 권고가 있었던 2020년과 이에 따른 기저효과로 중간배당을 실시, 배당액이 대폭 늘었던 2021년을 제외한 평소 배당액인 6400억원 수준에서 배당액이 결정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듯 주요 금융지주가 배당성향을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한 건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압박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은행의 공공재 성격을 강조하고 성과급 돈 잔치를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대통령실 참모진과 회의에서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금융지주의 배당 확대 기조를 제지하고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배당을 얼마나 할 것이냐 보다는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재정 건전성 유지)을 갖췄느냐가 핵심"이라며 "배당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배당을 많이 하려면 위험가중자산 비중을 맞춰야 하므로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중·저신용자에 대한 신용 공여가 불가능해진다"며 "중장기적으로 금융회사의 성장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주 눈치 보기도 극심…낮출 수도 없어 딜레마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 대형 금융사들이 배당금을 줄일 수 없는 건 주주들의 목소리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고배당에 대한 기대로 은행주 주식을 쓸어 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4대 금융지주의 평균 외국인 지분율은 62.36%다. KB금융지주가 73.41%로 가장 높았다. 코스피·코스닥 전체 상장사 중 외국인 지분율 7위다. 하나금융지주이 71.85%로 뒤를 이었고 신한지주(63.49%), 우리금융지주(40.69%) 순이었다.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 100%로 자회사로 비상장사다.

일각에서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이익에 반하는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얼라인파트너스는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6개 금융지주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하는 등 주주 환원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투자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했다. KB금융 이사회는 올해도 분기 배당을 정례화하고 배당성향 26%와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합해 총주주환원율을 33%로 높이기로 했다. 전년 대비 7%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신한금융지주도 올해 주주환원의 일환으로 1500억원의 자사주를 취득 및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연내 자사주 1500억원어치를 매입 및 소각해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총주주환원율 50% 달성을 목표로 보통주자본비율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현금배당 및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의 다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금융지주도 자사주 매입·소각을 포함해 총주주환원율 30% 수준을 매년 실시하고 분기배당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증권업계에도 대체로 금융지주의 배당 확대 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주환원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모든 금융지주의 주주환원율이 전년 대비 크게 개선됐다는 점과 목표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제시하고 그 이상으로 갈 경우 환원을 더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밝혔다는 점"이라며 "향후 주주환원율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은행들의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기대하며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그는 "2월 은행업 지수는 전월말 대비 1% 하락하며 정체된 상황이지만 2023년 호실적과 주주환원 확대에 따른 재평가(리레이팅)가 아직 진행 중"이라며 "2022년 주주환원율이 상향 조정되면서 향후 취할 수 있는 주주환원율의 출발선 자체가 올라갔고 대부분의 은행이 중장기 자본정책 로드맵을 발표하며 2023년 이후의 주주환원율 상향에 대한 가시성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