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A씨. 등록금 납부를 앞두고 채팅앱 위챗에서 "시중은행보다 싸게 환전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송금 요청에 솔깃해진 A는 위안화를 먼저 보냈고 1000만원 가량의 원화를 받았다. 문제는 그 때부터. 경찰로부터 "해당 자금이 보이스피싱과 연계된 돈"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범인들은 모두 잠적한 뒤였다. 졸지에 A씨는 공범으로 몰리게 됐다.

최근 보이스피싱 수법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A씨의 사례처럼, 금융 정보가 부족한 이들에게 낮은 환율·환전거래 등 거짓 정보로 속여 현금운반책이나 대포통장 예금주로 활용한 뒤 도주하는 방식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금융권과 함께 신종 금융사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디지털 금융 확산에 따라 서비스가 간편해진만큼, 보이스피싱 등 범죄 수법 역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에 더해 신종 유형에 관한 소비자의 인식 제고도 중요하지만, 보다 엄격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공개한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 / 뉴스1
지난해 12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공개한 범죄에 사용된 압수품. / 뉴스1
3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금융사기 예방을 위해 전 금융권과 합심,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범금융권 TF’를 출범시켰다. 금감원을 비롯, 19개 은행과 13개 금융협회·중앙회 등이 참여한다. 보이스피싱을 포함한 각종 금융사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행한다.

금감원은 "핀테크 산업의 발달로 국민들이 금융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으나, 그에 따라 보이스피싱 위험도 크게 증가했다"며 출범 이유를 밝혔다. 신종 사기수법 등 금융권 공동 대응이 필요한 현안 발생시 TF에서 신속하게 논의하는 등 TF를 상시 협의체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TF는 앞으로 ▲금융권의 자발적 내부통제 평가제도 도입 ▲신종 수법과 대응방안 공유를 위한 신속 대응체계 구축 ▲범금융권 금융사기 예방 홍보를 추진한다. 신종 수법 대응의 경우 금융 현장에서 인지하는 금융사기 수법을 적시에 파악하기 위해 업권별(협회·중앙회), 금융회사별 전담창구도 지정한다.

금융권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요즘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일당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 다량·양질의 데이터인 빅테이터다"라며 "양이 많다보니 한번 뚫리면 속수무책인데 금융권이 이를 디지털화에 활용하고 있어 개인뿐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가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금융사기 피해금액은 갈수록 늘고 있고, 보이스피싱 피해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와 금융감독원에 받은 자료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5년간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 피해금액만 1조7625억원에 달한다.

신종 사례도 늘었다. 휴대폰에 악성앱을 깔아 돈을 갈취하거나, 연말정산 기간 국세청 홈페이지로 위장해 사기를 벌이는 행각 등이 대표적이다. 보이스피싱 일당이 의도적으로 일반 금융 소비자에게 돈을 송금한 뒤 보싱스피싱 피해자인 것처럼 가장해 돈을 뜯어내는 통장협박도 기승이다.

업계는 보이스피싱 피해액과 사례 증가의 원인으로 금융권의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 활용을 꼽는다. 장혜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은행 디지털 전환의 트렌드를 이야기하며, "디지털 방식의 금융거래가 확대됨에 따라 사이버 보안 강화가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에 각 은행들도 보이스피싱을 걸러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최근 KB국민은행은 AI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AI모델 재학습 파이프라인을 통해 AI의 자동 학습으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에 즉각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보이스피싱 탐지율이 34.3% 향상됐다.

신한은행은 앞선 사례와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한양대 서울 캠퍼스에서 외국인 유학생 대상 금융사기 예방 교육을 진행했다.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 집단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을 이용하는 사례가 지속 증가하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AI 영상분석기술을 활용해 ATM 거래시 이상행동 탐지로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AI 이상행동탐지 ATM을 모든 영업점으로 확대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사기는 각종 전자금융수단을 활용해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데이터 기반 사기인 셈"이라며 "사기 행위에 대한 국민의 인식 능력도 높여야 할 뿐더러, 사기 유형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홍보나 교육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사기로 피해를 야기하면 민사·형사상 책임을 지금보다 엄격하게 묻는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