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인 국민연금 등의 반대에 부담을 느낀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을 포기했다. KT는 신임 대표 후보로 전·현직 KT 임원 4명을 선정했는데, 이후 여당 인사들의 비난이 거세다. 눈치껏 정치권 입맛에 맞는 후보를 대표로 앉혀야 한다는 뉘앙스다. 민간 기업 KT는 정관에 따라 대표 선정에 나선 만큼 문제가 없지만, 계속되는 외압에 부담이 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일 대통령실과 여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차기 KT 대표이사 선정을 놓고 KT를 강하게 저격했다.

왼쪽부터 박윤영 전 KT 사장, 신수정 KT 부사장, 윤경림 KT 사장, 임헌문 전 KT 사장/ KT
왼쪽부터 박윤영 전 KT 사장, 신수정 KT 부사장, 윤경림 KT 사장, 임헌문 전 KT 사장/ KT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KT 대표이사 면접 대상자 선정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했다. 전체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 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킨 것은 민노총의 MBC 장악시도와 다를 것이 없다며 사장 인선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KT는 기간통신 사업자로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자기들만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국민을 뒷전으로 여기고 사장 돌려막기를 고집한다면 절대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을 보면 ‘돌려막기’ ‘구현모 사장과 그 일당들’ 등 격양된 표현이 다수 포착됐다. 또 최종 후보 4인에 포함된 윤경림 KT 사장을 ‘구현모 대표의 아바타’로 표현하기도 했다.

같은날 오후 대통령실도 "정부는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생에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회사, 특히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며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KT의 대표이사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과잉 대응했다.

하지만, KT 인선자문단은 기존 33명의 후보자들의 지원 서류를 면밀히 검토한 후,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 요건을 기준으로 사내·외 후보 압축 작업을 진행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30대 주주 및 KT 노동조합으로부터 최적의 KT 대표이사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4인의 후보를 뽑았다.

결정된 KT 차기대표이사 최종후보는 ▲박윤영 전 KT 사장 ▲신수정 KT 부사장 ▲윤경림 KT 사장 ▲임헌문 전 KT 사장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려진 KT 차기 대표이사상은 ▲정보통신기술(ICT) 트렌드에 대한 전문지식 ▲KT 관련 업무 경험 및 입증된 경영 능력 ▲주주 및 기업 가치 제고 역량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효율적인 소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시 경영 ▲KT 그룹의 미래비전 제시 ▲노사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 등으로 추려졌다.

통신 업계와 학계에서는 KT가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최종 후보를 선정한 만큼 잦은 외풍에도 문제될게 없어 보인다고 평가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그렇지않아도 혼란한 시기에 차기 대표 선출 과정에서 구현모 대표가 돌연 사퇴하는 등 갑작스런 변수가 많았다"며 "국민연금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던 상황이지만 최대주주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납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T 이사회에서 나서서 후보자 선출 과정이 정당했음을 피력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으로 보인다"며 "정치권에서 사기업에 강하게 입김을 넣고 정치권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다"고 전했다.

이인애 기자 22na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