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대표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정권 교체에 따른 소유분산기업 CEO 연임 실패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CEO 교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소유분산기업이라는 이유로 정치권 개입이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연임을 준비하던 소유분산기업 CEO들이 줄줄이 교체되고 있다.

2020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 참석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당시 약속한 주주권 행사 관련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2021년 정기주총회에서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1
2020년 10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시위 참석자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당시 약속한 주주권 행사 관련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2021년 정기주총회에서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뉴스1
최근에는 구현모 KT 대표가 국민연금 반대에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후 차기 대표 후보자를 공개 모집해 심사했으나, 정치권에서는 최종 후보자로 선정된 인사들이 모두 KT 내부출신이라는 점에 못마땅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2022년 12월 구현모 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히면서 KT 이사회는 그를 연임 적격 후보로 선정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선 절차를 요구하면서 KT는 차기 CEO 후보자를 공개 모집해, 구 대표를 포함해 34명의 사내외 후보자가 모였다.

하지만 이미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힌 구 대표는 곧 연임 포기 의사를 발표했다. 외부 자문단으로 구성된 KT 인선자문단은 33명의 사내외 후보자 중 최종 KT 대표이사 후보자 4명을 선정했다.

KT는 투명한 절차를 위해 외부 산·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인선자문단 목록도 공개한 상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종 후보자 4인이 모두 KT 내부 인사라는 점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2일 공동 성명을 통해 KT 대표이사 면접 대상자 선정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고 꼬집었다. 같은날 오후 대통령실에서도 KT 대표이사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구 대표 사퇴 이전부터 시작됐던 공격이다. 국민연금에 이어 2월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세미나에서 쪼개기 후원 논란 등을 언급하며 구 대표를 ‘부적격자’라고 공개 저격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유분산 기업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소유분산기업이란 지분이 잘게 분산돼 확고한 대주주가 없는 기업을 말한다. KT의 경우도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10%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확고한 대주주가 없기 때문에 CEO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CEO를 선임해야 한다고 정치권에서 압력을 가하는 것인데, 외압의 통로로 활용되는 모습이 다수 포착돼 우려를 낳고 있다.

KT와 같은 국내 소유분산기업으로는 포스코, KT&G, 금융지주가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5대 금융지주 중 임기 만료가 닥친 3곳의 회장이 모두 연임에 실패하고 교체됐다. 실질적인 낙하산 인사는 없었으나 금융당국에서 미리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특정 인물에 대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실상 외압이 있었다는 평가다.

2024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KT와 함께 공공성이 있는 소유분산기업으로 거론되는 포스코도 차기 CEO 선출 과정이 순탄치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주인없는 회사’로 여겨지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경영학계 한 관계자는 "소유분산기업에 정치권 외압이 집중되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며 "확고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없는 기업으로 불리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주인이 돼야 하는 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목적이 있어 보이는 간섭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애 기자 22na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