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로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산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졌다. 수출 효자였던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전반이 대중국 수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며 무역 적자가 불어난다.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킨 챗GPT는 한국의 초거대 AI 분야 기술 발전 속도를 요구한다. 발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 클라우드와 통신 분야를 선도하는 KT는 대외 경제적 여건 변화와 상관없는 CEO 인선 문제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일분 일초 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하지만, 경영 전반이 올스톱 상태다. 정치권의 CEO 인선 개입으로 KT의 존망 마저 위태로운 처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 경영을 정부가 아닌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지만, 정부 여당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KT를 비롯해 포스코 등 주요 기업의 수장을 결정하는 과정에 도를 넘는 간섭이 판을 친다. 그들 입맛에 맞는 대표를 앉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KT 신임 대표 후보로 결정된 윤경림 사장은 최근 친윤 인사를 영업하며 정치권에 우호적 제스쳐를 내비쳤다.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상임경제특보를 맡았던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지만, 부담을 느낀 임 고문은 10일 자진 사퇴했다.

KT스카이라이프 신임 대표로 선임된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은 윤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여권에서는 대통령과 윤 부회장이 일면식도 없는 인물이라며 폄하했다. 윤경림 사장을 비롯한 KT의 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의중을 보인 셈이다.

대신 검찰은 구현모 대표와 윤경림 후보를 배임 혐의로 수사한다. 대규모 일감을 특정 회사에 몰아줬고, 친인척 회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것이다.

KT 사장 출신 한 인사는 "KT 대표 인선과 관련해 최근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예전 동료들과 논의를 해 봐도 너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KT 대표와 관련한 검찰 수사는 잘못하면 KT가 사업 자체를 못하도록 완전히 흔들어버리는 것으로,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그런 얘기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3월 말 열릴 주주총회 역시 KT 현 체제를 흔들 수 있다. 주주들은 대표 선임을 놓고 표대결을 할 예정인데,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현대차그룹, 신한은행의 결정이 반 윤경림 쪽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2% 쯤의 지분율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의 향방도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대표 선임이 불발될 경우 KT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

민간기업의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T처럼 체신부에서 떨어져나와 민영화된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국내외 경제환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정부 여당이 KT 대표 자리를 두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기까지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KT 정관에 그렇게 써 놓아야 하는 것 아닐까.

KT 대표 흔들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여당은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결정으로 역사에 새겨질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진 디지털인프라부장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