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체인
전수오 지음 | 152쪽 | 민음사 | 1만2000원

"빛처럼 만물에 스미어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꿰어 나가는 영혼의 궤적"

2018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오 시인의 첫 시집 ‘빛의 체인’이 민음의 시 307번으로 나왔다.

세계를 바라보는 전수오의 시선은 새의 감각을 닮았다. 미세한 틈부터 광활한 대지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은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새의 감각으로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 재현된 가상의 세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이 초래한 현실의 폐허들이다.

‘빛의 체인’은 첫 시 '환기구'의 작은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지막 시 ‘145초의 어둠’으로 끝난다. '환기구'의 빛은 너무도 미약해서, 어둠을 물리치는 대신 어둠이 ‘어떤 어둠’인지를 더 잘 보여 준다.

빛은 상자 속, 창이 없는 방, 야생의 밤, 깊은 산속, 열매의 내면, 굳게 다문 입안을 희미하게 비추며 어둠이 저마다 내밀한 이야기를 품은 각각의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한다. 가상과 실제의 세계가 뒤섞인 전수오의 시적 상상력은 인간이라면 떨쳐버리기 힘든 인간중심적, 이원적 사고를 가볍게 이탈한다.

시인은 우주와 자연, 설계자인 인간 자신까지도 속속들이 모방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점점 손쓸 수 없도록 번져 가는 현실의 폐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 내는 챗봇, 세상의 질서에 의문을 품는 게임 속 식물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피조물들에게 이미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들은 인간이 무분별한 문명이라는 환한 빛을 좇아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가장 먼저 뭉개고 잊은 존재들이다. 전수오의 시는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의 뒤란’이 된다. 암실에서만 자신이 품은 빛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아날로그 필름처럼 이들은 시 속에서 자신이 품었던 찰나의 삶과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인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