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 ‘검정고무신’에 비극이 발생했다. 원작자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해 분쟁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다.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데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IT조선은 저작권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검정고무신 극장판 ‘추억의 검정고무신’이 2020년 11월 개봉했다. / 추억의 검정고무신 페이스북 갈무리
검정고무신 극장판 ‘추억의 검정고무신’이 2020년 11월 개봉했다. / 추억의 검정고무신 페이스북 갈무리
만화 ‘검정고무신’ 원작자 이우영 작가가 3월 11일 별세했다. 저작권 분쟁이 이유다. 그는 "상식 있는 사회라면 캐릭터사업 대행 출판사가 원저작자를 고소하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판결이 나리라 믿는다"며 3년이 넘는 법정 다툼을 해왔다. 기업과 개인 간의 법정다툼이 되면서 이 작가는 어려움을 호소해 왔고 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 결정적 이유로 보인다.

만화 업계는 비극의 원인으로 오래된 관행인 매절계약 체결 과정과 지분계약을 꼽는다.

매절계약은 출판사 등 유통 사업자가 저작권을 독점 양도받는 것을 말한다. 보통 저작권(저작재산권)은 기간을 정하고 이용을 허락하는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다. 이런 계약은 작품 흥행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가와 유통 사업자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뤄진다. 작품을 내야 하는 원작자가 일정 금액을 받고 작품 관련 권리를 포기하는 식이다.

문제는 유통 사업자가 데뷔나 연재를 원하는 작가의 심리를 이용해 계약에서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에서 발생한다.

지분계약은 그 우월한 지위에서 연결되는 문제다. 창작에 관여하지 않은 이가 저작권자로 공동 등록되면서 원작자가 권리를 잃는 식이다. 그렇다고 저작권 지분계약을 없앨 수는 없다. 공동제작이 많아서다. 음악 저작권이 그 예다. 노래를 만들 때 작곡가와 작사가가 다르다면 지분계약이 필요하다. 만화도 글 작가와 그림작가 등 분업이 이뤄진다. 여기에 작가 등 창작자가 저작권법을 잘 모른다는 점도 창작자에 불리한 요소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검정고무신은 출판사가 저작권 지분을 얻어 공동 저작권자로 등록됐다"며 "창작자가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과 공동 저작자로 지분을 나눠 등록하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우영 작가는 출판사와 2007년 사업권 계약을 체결한 이후 저작권 분쟁을 겪었다. 출판사가 사업권을 계약하며 작품 저작권 지분을 얻어 ‘공동 창작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 결정적이다. 출판사는 여러 차례의 계약 끝에 검정고무신 저작권 지분을 53%까지 올렸다.

그 결과 원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이 작가는 2019년 출판사로부터 합의 없이 검정고무신을 수익화했다고 소송을 당했다. 그는 2020년 출판사를 상대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화계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기 위해 협의체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웹툰협회는 3월 15일 저작권법 개정과 불공정계약 관행을 타파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에 3월 22일 오전 만화·웹툰 실무 협의체를 연다. 만화가협회도 3월 넷째 주 좌담회를 통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도 3월 15일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겠다며 정책적·제도적 대책을 강화한다고 나섰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창작자의 권리는 창작하는 순간 창작자의 것이다"라며 "창작자가 이용허락을 통해 사업권을 줄 때 창작자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