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일본 출장을 계기로 글로벌 경영 행보에 속도를 낸다. 일본 출장을 통해 반도체·통신 사업 협력을 강화하고, 이후 중국과 미국을 잇달아 방문해 반도체 규제 관련 전방위 설득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12월 6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다프라주에 위치한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2년 12월 6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다프라주에 위치한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
"적은 적을수록 좋다"…日서 반도체·통신 사업 협력 강화

이 회장은 17일 윤석열 대통령 방일 일정의 일환으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 행사에 참석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총수들도 함께했다.

BRT에서 양국은 한일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 경제계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 협력, 한일 인적 교류 정상화, 제3국 공동진출 확대 등을 제안했고, 일본 측도 상호 무역·투자 확대, 디지털·그린 분야에서의 이노베이션, 성장산업 연계 등 경제교류 확대 추진을 언급하며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과 사업 협력을 약속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재계 총수들은 이후 일본에서 기업·거래처 등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번 출장을 통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일본과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도체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 일본이 해당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이날 BRT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 관련 한일 협력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것인데, 규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 협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이 회장은 네트워크 사업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일본 1·2위 통신사업자에게 5G 네트워크 장비 수주를 성공했는데, 사업 협력 배경에 이 회장의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일본 게이오대 유학파 출신으로 일본어에 능통해 일본 재계와 활발하게 교류해왔다. 그는 2022년 7월 방한한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과 회동했고, 2019년에는 한국 기업인 중 유일하게 일본 럭비 월드컵에 초청 받았다.

차기 출장지는 중국·미국 유력

이 회장은 일본 방문에 이어 이달 말 중국 출장길에 오를 가능성이 거론된다. 25~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발전포럼(CDF)’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올해 CDF에는 팀 쿡 애플 CEO와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회장이 행사에 참여할 경우 CDF 첫 참석이 된다.

재계는 이 회장이 CDF에 참석할 경우 중국 당국과 소통을 넓힐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CDF에서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직접 글로벌 인사들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의 견제로 중국 내 반도체 투자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인데, 관련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4월에는 미국 출장이 점쳐진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예정돼 있는데 이 회장도 동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미국에 방문할 경우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국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방위 설득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또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을 둘러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이 회장의 중국이나 미국 방문 일정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