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파’가 길어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객사 재고 조정 영향으로 올해 1분기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당초 계획보다 더 큰 규모의 감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위)와 SK하이닉스 사옥 로고 /IT조선DB
삼성전자(위)와 SK하이닉스 사옥 로고 /IT조선DB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반도체 업황 악화 여파로 전년 대비 급락한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조 9071억원, SK하이닉스는 영업손실 3조 1052억원을 낼 전망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6.5%, 91.2% 급감한 수준이다.

분기 영업이익 14조원을 웃돌던 삼성전자의 실적은 지난해 3분기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2022년 3분기 10조 9000억원에서 4분기 4조 3000억원으로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의 실적이 부진한 영향이다. DS부문은 지난해 3분기 5조 1200억원에서 4분기 94.72% 감소한 2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DS부문이 올해 1분기 2조~3조원 규모의 적자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반도체 재고 수준이 상반기 중 정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IT업체들이 잇따라 재고를 줄인 결과 D램과 낸드플래시의 출하량이 감소하고 가격 역시 하락했다.

메모리 반도체 매출 비중이 90% 이상인 SK하이닉스는 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증권가는 적자 규모가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같은 실적 전망에 따라 기업들은 감산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더욱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15일 보고서를 통해 "2023년 수요 성장에 대한 낙관은 회사의 실제 전망보다는 경쟁사의 추가적인 투자 축소를 위한 ‘블러핑’으로 판단된다"며 "D램 수익성이 역대 최악까지 감소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블러핑은 설득력이 없으며 삼성전자 역시 감산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50% 이상 줄이고 생산량을 감축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감산’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첨단 공정 전환을 통한 자연적 감산을 시사한 바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 52조 1879억원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10조원 이상 불어난 수치다. DS부문 재고가 29조 576억원을 기록하며 전체의 55.7%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보다 6조원 정도 늘어난 15조 6647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한파’가 올해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3분기까지 지속될 경우 기업 생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업황 악화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라며 "3분기 업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불어난 적자를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