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 ‘검정고무신’에 비극이 발생했다. 원작자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해 분쟁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다.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데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IT조선은 저작권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직접 작품을 창작한 원작자는 정작 자신의 창작물을 이용하지 못한다."
"아무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는 말에 전문가 검토도 받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는 모두 저작권법과 정부의 저작권 보호 제도가 존재함에도 실제 창작자에게 발생했던 문제다. 흔히 불법유통으로 인한 저작권 침해만 창작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짧았던 셈이다. 만화계 단체가 이런 법·제도 허점을 스스로 보완하기 위해 움직였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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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투성이 현행 저작권 보호 제도

21일 업계 전문가들은 검정고무신 사태의 발생 원인으로 불공정한 계약 관행과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현행 저작권법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불공정한 계약 관행은 보통 자신의 창작물을 독자·관객에 선보이고 싶은 창작자의 약점을 악용한다. 공정한 보상 문제는 소위 ‘매절계약’에서 비롯된 문제다. ‘저작권’은 2차 저작물 작성권 등 7개의 권리가 묶여있는 ‘권리의 다발’이다. 매절계약은 이 권리다발을 통째로 넘기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각종 법과 제도 아래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창작자와 사업자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2021년 5월 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유령 작사가’가 그 예다. 유령 작사가 사건은 신인 작사가의 등용문으로 여겨지는 유명 학원의 원장이 원생 작품에 공동 작사가로 이름을 올리고 저작권 지분을 뺏어 논란이 된 일을 말한다.

한 창작자 단체 관계자는 "저작권위원회에 일단 저작권을 등록하고 나면 바꾸기 번거롭다"며 "일단 계약하고 나면 협회 같은 단체는 등록된 대로 저작권료를 줄 수밖에 없어 창작자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데뷔, 작품 출간 등을 미끼로 절실한 창작자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라며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정부 표준계약서가 있어도 정부가 사용을 강제할 수도 없고 실제 현장에서도 잘 쓰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창작자 업계, 자체 허점 보완 노력

만화·영화·작가·음악 등 다양한 창작자 업계는 이 같은 저작권 보호제도의 허점을 우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이들은 특히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지만 창작자가 잘 몰라서 발생하는 권리침해를 예방할 계획이다. 계약서 내 비밀유지 조항이 그 예다. 창작자 업계에서는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전문가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일단 도장을 찍는 창작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자체적 노력 사례가 이번에 웹툰협회가 추진하는 ‘웹툰계약동행센터’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계약을 체결할 때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함정 조항이 있는지 예시 사례로 구성한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하려고 한다"며 "작가가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동행센터 같은 곳을 통해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홍보도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저작권 보호 제도 허점 보완에 앞서 창작자가 약자 위치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정부가 창작자와 사업자 의견을 정직하게 다 받으면 당연히 상대적으로 소수인 창작자보다 앓는 소리하는 사업자 목소리가 크다"며 "창작자와 사업자가 동등한 지위가 아닌데 정부가 이를 같다고 바라보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창작자를 보호하고 육성해야 전체 시장 규모가 성장해 나눠먹을 몫도 많아지는 법이다"라며 "작은 파이를 정해놓고 서로 뜯어가는 방식으로는 서로 손해만 본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