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업계가 위기다. 방송 제작 재원 부족으로 인한 경영난이 주 원인이다. 수익성 개선은 요원하기만 하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한계도 명확하다. PP는 국내 미디어콘텐츠 생태계의 근간인 핵심 구성원이지만 가치사슬의 최하단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PP 업계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IT조선이 살펴봤다. [편집자주]

홈쇼핑 채널을 제외하면 국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법인은 155개(2021년 기준)다. 해당 법인 중 프로그램 제작과 OTT를 이용한 콘텐츠 유통을 모두 하는 PP는 CJ ENM과 iHQ 두 곳 뿐이다. iHQ가 중소 PP 중에는 유일하다. IT조선은 박종진 iHQ 부회장을 만나 iHQ가 어떻게 녹록치 않은 미디어콘텐츠 시장 환경을 이겨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박종진 iHQ 부회장이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iHQ
박종진 iHQ 부회장이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iHQ
편성 프로그램 자체 제작 100% 달성

iHQ는 1995년 12월 케이블TV 시대가 시작된 때부터 방송채널을 운영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현재 iHQ, iHQ 드라마, iHQ 쇼, 샌드박스 플러스 등 4개 채널과 OTT ‘바바요’를 운영하고 있다. iHQ는 또 사이더스HQ를 통한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iHQ를 콘텐츠 생산자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PP로 꼽는다. 올해 2월 기준 채널 편성을 오리지널 프로그램만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다. iHQ의 자체 제작 편성률은 100%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다른 이름인 ‘프로그램 프로바이더(Program Provider)’라는 말 그대로다.

iHQ 위상을 높인 이는 박종진 부회장이다. 그는 2021년 5월 iHQ 총괄사장으로 부임해 오리지널 IP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MBN과 채널A 등 방송사를 거친 박 부회장은 재방송 전문 PP와 차별화를 위해서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특히 제작비를 낮추기 위한 비용효율화 작업에 매진했다. 드라마 대신 예능 프로그램 위주의 작품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모태펀드 같은 지원 제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했다.

박 부회장은 "전에는 드라마를 3~4편씩 만들었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손실이 컸다"며 "자체 제작 비중을 높이고 제작을 효율화해 제작비를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100억원쯤의 절감효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산업 활성화 원하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라"

iHQ의 이 같은 전략 수정은 수익성 개선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꾸준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으로 IP를 확보하면서 해외에 판매하거나 라이브커머스 등 부가 수익으로 연결됐다.

박 부회장은 특히 정부가 자주 이야기하는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온갖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방송만 하는 PP가 많은데 그러면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야만 산업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PP에게 정부와 유료방송 업계가 관심을 갖고 도와줘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며 "제작을 하나도 하지 않는 PP가 소수의 직원만 두고 앞쪽 채널번호를 배정받아 수익을 내는 건 콘텐츠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iHQ가 OTT 바바요를 만든 것도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다. 현재 PP 중에서 OTT를 운영하는 곳은 CJ ENM과 iHQ 뿐이다.

그는 "앉아서 TV를 보는 대신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OTT를 보는 시대가 와서 바바요를 만들었다"며 "모바일 시대를 대비하면서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에 이바지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채널번호의 구조적 한계

iHQ가 아무리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쓰면서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수익성 개선에 한계가 존재한다. 그것도 iHQ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부분에서다.

유료방송 채널번호가 그 예다. 채널번호가 40번대를 넘어서면 광고수익을 높이기 어렵다. 채널 번호가 뒤로 갈수록 시청자가 찾지 않기 때문이다. iHQ의 4개 채널은 IPTV·위성방송 등 플랫폼에서 80번대 채널에 존재한다.

박 부회장은 "유료방송 채널번호를 바꾸려면 각 채널의 동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승인이 필요하다"며 "이는 중소 PP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이제는 PP가 아무리 돈을 많이 쓰고 콘텐츠를 열심히 제작해도 번호를 옮길 수 없는 시스템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청률이 높아도 채널번호가 뒤에 있으면 시청자가 찾기 힘들어 광고단가가 낮을 수밖에 없어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며 "정부가 콘텐츠 산업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PP에 채널 배정 우선권을 주면서 제작에 투자하지 않는 채널은 뒷번호로 가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콘텐츠 생태계 혁신 필요"

박종진 부회장은 단순 규제 개선이 아닌 미디어콘텐츠 혁신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업계에서 이동통신 3사의 유료방송 자회사가 PP를 운영하면서 채널번호를 앞에 배정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밝혔다.

일례로 SK브로드밴드의 Btv 채널번호 1번은 PP 자회사인 채널S다. KT계열인 지니TV와 스카이라이프는 ENA가 1번이다. 그가 올해 KT 차기 대표 후보에 지원한 이유다. 경직된 시장구조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박 부회장은 "IPTV가 PP를 갖는 것은 기업이 은행을 소유한 것과 같은 셈으로 보인다"며 "법에서 금산분리를 원칙으로 두고 기업이 보유한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남용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유료방송 플랫폼이 PP 자회사에 앞 채널번호를 부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의 OTT 관련 정책이 대형 OTT 중심으로 진행되는 점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진행하는 각종 간담회에 중소 OTT가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주도하는 이때 정부가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이 콘텐츠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방송 규제나 제작비 세액공제 혜택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경영에 집중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iHQ는 재방송 PP가 아닌 콘텐츠 제작 PP로 꾸준히 성장하겠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