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동안 PC를 사용하다 보면 종종 난감한 ‘고장’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쿨링 팬이나 하드 디스크 같이 물리적으로 움직임이 있는 부품들이 고장나는 경우가 흔하고, 그래픽카드나 파워 서플라이 같은 부품들도 종종 고장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컴퓨터의 ‘심장’으로 꼽히는 ‘CPU(중앙처리장치)’의 고장 사례는 의외로 접하기 힘들며, CPU 교체의 이유도 ‘고장’보다는 ‘성능’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절대’는 없으며, CPU가 고장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CPU는 PC 안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고장나도 한 눈에 쉽게 파악되지도 않는다. PC 부품 중에서도 중요성이 높고 고가의 부품이며 메인보드와 호환성 측면도 있는 만큼 안정적인 보증이 제공되는 CPU는 PC의 신뢰도를 더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PC나 업그레이드를 위한 새로운 인텔 CPU를 구입하는 데 있어, CPU의 ‘정품’ 여부는 PC의 신뢰성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다 같은 인텔 프로세서처럼 보이지만 정식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된 ‘정품’이 아니라면, 만에 하나 ‘고장’을 만났을 때 어떠한 방법으로도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한다. 반면 인텔 공인대리점 3사가 공급하는 인텔의 ‘정품’ CPU는 3년의 안정적인 보증과 함께, 다양한 추가 혜택도 제공된다.

여전히 ‘벌크’ CPU가 일반 소비자용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다나와 홈페이지 갈무리
여전히 ‘벌크’ CPU가 일반 소비자용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다나와 홈페이지 갈무리
수십 년 전에는 프로세서의 ‘정품’ 여부가 실제 제품의 ‘진위’ 여부를 가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프로세서 제조 기술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 인텔의 CPU는 인텔만이 만들 수 있다. CPU 내부적으로도 제품 정보와 동작 속도 등을 임의로 변경할 수 없어, 예전처럼 CPU 외부의 정보를 지우고 다른 모델처럼 판매하는 ‘리마킹’은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반품이 어려운 해외 직구에서 가끔 이런 사례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유통 채널의 문제다.

조립 PC 시장에서 인텔 CPU의 ‘정품’은 ‘인텔 제조’보다는 ‘공식 유통 경로를 거쳐 판매된 제품’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인텍앤컴퍼니, 피씨디렉트, 코잇 등 공인대리점 3사를 거쳐 판매되는 ‘개별 박스’ 제품을 의미한다. 반면 ‘벌크’나 ‘병행수입’은 분명 인텔이 제조한 CPU라 해도 ‘정품’은 아니다. ‘정품’과 ‘벌크’ 간 기능과 성능은 당연히 동일하겠지만, 유통 경로가 다른 만큼 보증 조건이 다르고, 이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현재 국내 PC 시장에서 박스 없는 ‘벌크’ 제품은 박스 포장된 ‘정품’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된다. 특히 제품 패키지에 쿨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고성능의 ‘K 시리즈’ 프로세서는 벌크에 저가형 쿨러를 포함한 패키지가 쿨러 없는 정품보다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 이미 사용하는 고성능 쿨러가 있다면, 벌크 제품은 쿨러와 패키지 가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위험 요소가 있다.

인텔 정품 CPU는 ‘국내 공인대리점을 통해 유통된 CPU’다. /리얼CPU 홈페이지 갈무리
인텔 정품 CPU는 ‘국내 공인대리점을 통해 유통된 CPU’다. /리얼CPU 홈페이지 갈무리
인텔의 PC용 프로세서는 크게 일반 소비자용과 기업 소비자용으로 나뉘어 유통된다.

이 중 일반 소비자용은 잘 알려진 ‘정품 박스’ 패키지이며, 인텔이 3년의 글로벌 제품 보증을 제공한다. 공식적으로는 부품 단위로 구입하는 CPU나 조립 PC에 사용하는 CPU는 이 ‘정품 박스’를 사용해야 제대로 된 보증을 받을 수 있다. 제품의 시리얼과 유통 코드 등에서 프로세서가 일반 소비자 시장을 통해 유통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벌크’는 기업 소비자용으로 보통 대량의 PC 제조를 위해 PC 제조사들에 공급된다. 대기업의 PC에 탑재된 프로세서가 이 ‘벌크’ CPU다. 벌크 CPU는 일반 소비자 시장의 CPU와 동일하지만 제품 보증의 책임이 인텔이 아니라 공급받은 PC 제조사에 있다.

이러한 ‘벌크’ CPU는 원칙적으로 인텔이 공급한 PC 제조사의 PC에서 사용되어야 하며, 보증 기간도 PC 제조사의 정책에 따르다. 고장이 난 경우에는 PC 제조사를 통해 보증을 받아야 한다. 같은 인텔 CPU지만 이렇게 OEM 공급된 벌크 CPU는 인텔의 보증을 받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 ‘벌크’ CPU는 일반 사용자가 사용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애초에 일반 사용자를 위한 CPU 유통 구조가 아니다 보니 일반적인 인텔의 글로벌 제품 보증은 벌크 CPU에 적용되지 않는다. 어느 채널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나중에 고장이 나면 당시 구입처에 문의해 보는 게 전부인데, 이마저도 구입처를 찾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벌크 CPU의 경우 보통 초기불량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개월에서 1년 정도의 구입처 자체 보증 정도가 전부고, 인텔의 글로벌 RMA 역시 벌크 CPU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몇 년 정도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면 상황은 더 곤란해진다. 인텔의 코어 프로세서는 매 년 세대가 바뀌고, 일반적으로 소켓 규격은 두 세대를 공유하는 패턴을 이어 오고 있다. 만약 2~3년 뒤 세대 교체로 소켓 규격이 바뀐 뒤 사용하던 벌크 CPU가 고장이 나고, 구매처를 찾을 수 없어 CPU를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오면, 이 때는 CPU 뿐만 아니라 멀쩡한 메인보드까지 다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정품 CPU는 이 때 CPU만 교환해서 추가 비용 없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인텔 정품 CPU의 확인 방법 /리얼CPU 홈페이지 갈무리
인텔 정품 CPU의 확인 방법 /리얼CPU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에서 개인 사용자가 조립 PC에 사용할 수 있는 인텔의 ‘정품’ 프로세서는 인텍앤컴퍼니, 피씨디렉트, 코잇 등 공인대리점 3사를 거쳐 판매되는 ‘개별 박스’ 제품이다. 이들 ‘정품’ 박스 제품은 박스 패키지 옆면에 공인 3사의 스티커 여부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리얼CPU’ 사이트를 통해 CPU에 각인되어 있는 일련번호를 조회하거나, 정품 스티커의 QR 코드를 통해 정품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정품 CPU를 직접 구입할 때는 패키지의 밀봉 여부, CPU의 각인된 정보와 박스의 제품 정보가 일치하는지 여부, 정품 조회시 제품명이 일치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면 된다. 정품 CPU가 탑재된 조립 PC를 구입할 때는 이런 확인이 다소 까다로울 수 있는데, 조립 이후 제품을 전달받을 때 정품 박스와 스티커를 모두 전달받아 보관하는 것을 추천한다. 많은 조립 PC 판매처들이 사용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PC 조립 영상 제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

공인대리점 3사를 통해 판매되는 인텔의 정품 CPU는 각 공인대리점을 통해 3년의 보증 기간이 제공된다.

구입 후 3년 이내에 고장이 발생하면 기본적으로는 동일 제품으로의 교환이 원칙이지만, 동일 제품 교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같은 플랫폼에서 사용 가능한 차상위 제품으로 무상 교체된다. 이에 CPU 교환 시에도 메인보드 교체 등의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을 막고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정품 CPU 구매자를 위한 이벤트도 ‘리얼CPU’ 사이트를 통해 상시 진행되고 있다.

큰 맘 먹고 고가의 고성능 PC를 구매한다면 안심하고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 때, 비용을 약간 아끼겠다고 주요 부품에 ‘정품’이 아닌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절약한 비용보다 더 큰 ‘위험’을 남기는 선택일 수 있다. 특히 PC를 구성하는 부품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고가의 부품이자, 다른 부품에 영향도 큰 ‘CPU’는 꼭 ‘정품’ 여부를 챙겨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정품 CPU’ 구입은 여러 모로 안정적인 PC 사용을 위한 ‘보험’같은 의미를 갖는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