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수천만원의 변호사 선임비를 보장하는 운전자 보험 경쟁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경보를 발령하는 등, 교통정리에 나섰지만 당분간 경쟁 분위기가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운전 관련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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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DB손해보험이 운전자보험 변호사 선임비 보장 시점을 경찰 조사 단계로 앞당긴 상품을 출시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DB손보는 자동차 사고시 경찰 조사 단계부터 변호사선임비를 보장하는 특약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특약 출시 이후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급증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39만6000건이었던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같은 해 11월 4개월만에 60만3000건으로 빠르게 늘었다.

변호사 선임비 특약 상품이 인기를 끌자 삼성화재,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주요 손보사들도 관련 특약 가입금액을 확대한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경쟁이 과열됐다.

특히 KB손해보험이 변호사선임비 특약 한도를 최대 7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올리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금융당국이 과열 경쟁 제동에 나섰다.

대형 손보사, 오는 17일부터 변호사선임비 특약 5000만원까지 한도 조정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형사합의금 및 변호사선임비용 가입금액 운영 시 유의사항'을 통해 해당 특약의 보장 한도가 실제 발생할 수 있는 변호사 수임료보다 높은 수준의 가입금액 확대로 과도한 보험료를 수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언급했다.

이에 오는 17일부터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들은 운전자보험 내 변호사선임비 특약 한도를 5000만원 수준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한화손해보험은 변호사선임비 특약 한도를 7000만원까지 늘린지 일주일 만에 해당 제재로 인해 보장 한도를 5000만원으로 조정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가 보장 금액 한도를 과도하게 늘리자 제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사들은 감독기관인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새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당분간 경쟁 불가피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금융 당국의 이같은 조치에도 당분간 장기 보장성 보험 판매 경쟁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운전자보험은 손해율이 낮은 편이라 수익성이 높은 보험에 속하고 장기 고객 유치에 유리하다"며 "어린이보험 경쟁이 치열해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장기 보장성 보험 판매 경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1월부터 시행된 새회계기준(IFRS17) 체제 하에서 장기보험 판매 실적이 중요해진 것도 해당 시장 경쟁이 과열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IFRS17 하에선 계약자서비스마진(CSM)이 중요한 보험 수익 지표로 작용한다.

CSM는 보험계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으로, 보험 상품의 손해율과 계약유지율에 따라 변동된다. 운전자보험과 같은 장기보장성 보험 신계약이 많아질수록 CSM이 높아져 이익 증가로 직결된다. 대형 손보사들이 장기 보장성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도하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새 회계제도로 바뀌면서 해당 시장의 경쟁 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의 요구에 따라 보장 한도를 조정하겠다고 합의한 것이 경쟁 강도를 약하게 낮추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손보사들은 보장성 보험 한도를 조정한다고 해도 새로운 특약 조항들을 신설하면서 지속적으로 차별화에 주력할 것"이라며 "바뀌기 전 기준으로 세팅되어 있는 기존의 지표들로 시장 변동성 등을 판단하기엔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5월 실적발표에 업계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 보장성 보험인 ‘어른이보험’과 같은 상품이 인기를 끌고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보장하는 보험 역시 당분간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정 기자 uzzon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