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상정이 유보되면서 법안 운명이 다음 주로 넘어간 가운데, 골이 깊어지는 의료계가 남은 시간 동안 합의점을 찾아 문제를 봉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간호계는 기존 간호법 원안 그대로 안건을 상정해 민생 법안 모두를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사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여당과 마련한 중재안을 요구, 거부될 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일원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간호법·면허정지박탈법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시청역 일원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간호법·면허정지박탈법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범의료계에 따르면 13일 본회의에서 표결이 불발된 간호법이 다음 본회의 일정인 27일에 상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보건의료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주 본회의 당시 국회는 간호법만 상정해 표결하고 의사면허취소법은 추후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간호법이 미뤄지면서 두 법안이 27일에 일괄 상정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선 의료계는 무기한 단식투쟁을 연기하고 16일 ‘간호법·의료인 면허법 저지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해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강행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지난 3년 동안 보건복지의료직역들은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와 싸워왔지만 우리들이 희생한 결과는 무시된 채 정치권은 간호사만 헌신한 것처럼 보고 있다"며 "보건의료직역간의 협업을 깨트리고 간호사 직역에만 특혜를 주는 간호법 제정이 아닌,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개선해 모든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근무여건 및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분노와 참담함을 넘어, 다가올 의료체계 붕괴까지 우려해야 하는 마음에 잠을 이룰 수도 없다"며 "간호법과 면허박탈법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대화가 아닌, 총파업과 같은 최후의 수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측은 "각 직역 사이 갈등이 있는 문제를 특정 직역만의 이익이나 견해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며 "우리도 합리적 중재안을 찾기 위한 노력과 각 직역간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는 노력들을 정부와 당이 같이 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보건의료단체와 당정은 기존 법안의 1조 항목에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한 중재안을 내놓은 상태다. 해당 중재안은 간호사의 역할을 현행 의료법과 유사하게 설정하되 간호사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의 책무를 삽입한 법안이다.

하지만 간호단체는 중재안 자체가 짜놓은 각본에 불과하다며, 원안대로 처리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간호법은 결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의 업무를 침해, 침탈하지 않는데도, 의사협회의 가짜뉴스와 비방이 도를 넘고 있다"며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과 동일하게 간호사 면허 범위 내 업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타 직역업무 침해, 침탈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간호법에 파업으로 맞서는 의협의 제 밥그릇 챙기기에 동조하는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며 "특히 간호법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며 선진의료시스템 구축의 토대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부모돌봄법인 간호법 제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민주당은 의석수를 기반으로 27일 본회의에서 간호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측은 "13일 본회의 당시 간호법이 지난 대선 양당 대선 후보 공통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본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해주지 않아 처리되지 못 했다"며 "민주당은 27일 본회의에서는 반드시 원칙대로 간호법과 의료법을 포함해 민생 법안 처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통령실이 양곡관리법에 이어 잇달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간호법이 국민보건의료를 흔들 정도로 중요한 의제인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할 사항이라며, 다음 본회의까지 여야 간 논의 상황을 지켜본 다음 대응 방향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간호법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정해진 바 없다"며 "법안 쟁점이 국민 우려로 번지고 있는 점을 인지한 만큼 진료 현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여야가 적당한 합의점을 찾길 바랄 뿐이다"고 언급했다.

현재로써는 간호계와 보건의료계 모두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중재에 적극 나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봉합을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간호법이 점차 단순 의료직역간 문제를 넘어 여야간 정치적 쟁점으로 번지고 있어 복지부 역시 쉽사리 어떤 행동을 취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직역간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복지부의 책무는 분명 존재하지만 현재 양측이 각각 여야의 입장을 주고받고, 반대로 정당이 각 직역을 대변하는 등 국회 내 싸움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주무 부처인 복지부가 협의 테이블을 제안한다 해도 27일까지 뚜렷한 합의점을 찾기란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